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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와서 딱 열번째 달을 보고 있는 오늘, 드디어 여행기가 시작된다. 실은 난 오랫동안 머뭇거렸다. 이걸 읽는 대부분의 이들이 내가 여행 여정의 마지막쯤 어떤 사건들을 겪었는지는 소상히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여행 다녀오면 당장 만나야지 하는 목록에 적힌 사람들의 1/3도 만나지 못했지만 집으로 돌아온 후 약 십일간 만남의 자리에서 대화의 주도권은 전적으로 내가 쥐고 있는 중이다. 난 그렇게 그 어마어마했던 사건들을 되풀이해 이야기하며 지내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말하고 말해도 그 사건들이 바래진 일이 되지 않고 말할 수록 생생해진다. 괴로운 것도 자책하고 있는 것도 아니건만 그저 언제 그 사건들이 멋대로 개놓은 반팔티들이 들어있는 서랍 바로 윗칸인 '추억의 칸'으로 들어갈지 잘 모르겠다는 것 뿐이다.

 머뭇거렸던 이유는 그것이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런 말을 건냈다. "그럼 끔찍한 마지막 날 빼면, 여행은 어땠어?" 글쎄요 여행 어땠을까요 저도 그게 궁금하네요. 난 별로 대답할 말이, 쓸 말이 없었다. 집에 돌아오고서 일주일 쯤 지났을 무렵, 내가 그 마지막 날 거대한 부피의 연쇄 사건들(ㅋㅋ)에 상상이상으로 충격을 받았었다는걸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차에 치였을 때 '아 다리가 좀 치였네, 헐 내가 교통사고를 당하다니, 이런 경험 신기하고 헤아릴 수 없을만큼 값진듯?'하고 넘겼다가 시간이 가면 후유증이 잔잔히 오는 것처럼. 그 후유증은 여행 전반에 대한걸 잊어버리게 하고, 오로지 그 연쇄적인 사건들만 머리에 남아있게 했다.

 나는 내 여행이 그저 "여기 짱이었음", "이거 처음 먹어봤는데 맛있었음"와 같이 보고되는 걸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도래할 어느때에 내가 갔던 곳들로 여행을 갈 사람들에게 선입견을 심어줄까봐 특정 지역을 힘껏 강조하는 것 또한 망설여진다. 그저 나의 솔직한 '그때 그느낌'을 적어두고 싶을 뿐이다. 그건 절대 보고서를 쓰듯 수첩에 적은 내용을, 메모리카드에 있는 사진을 일방적으로 실어다 옮기는 걸로는 안된다. 나는 런던 히드로 공항에 처음 내렸을 때 들었던 느낌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그 날의 모든게 생각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결국은 아무리 나를 한층 더 크게 키워줄 사건사고였다고해도, 그 사건사고가 내 여행에 대한 추억의 전부가 되는건 심히 짜증나는 일이다. 나는 이제 더이상 그 무시무시했던 마지막 날이 떠오르는걸 외면하기 위해서라도, 지난 여름 유럽에서의 하루하루를 집중해서 적어볼 참이다.




댓글
  • 프로필사진 larinari 이 포스팅 읽으면서 드는 생각.
    마지막 날에만 붙들려 있는 것에서 놓여나는 길은 어쩌면 첫날부터 되짚어 정리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네.
    결국 여행의 마지막 날은 너무 충격적이라 독립적인 기억으로 또렷해질 수 있겠지만, 또 그 날은 그 전날의 다음날 아이겠어?

    맞어. 여행기에 대한 너의 생각에 박수갈채를 보낸다.
    메모리카드의 사진을 그대로 옮겨다 놓는 여행기는 읽는 입장에서도 이젠 사절.ㅋㅋ
    서두르지 말고 하나씩 정리해서 올려줘. 차근차근 보면서 너의 여행을 따라가볼께.
    히드로 공항의 느낌이 정확히 살아나서 전해주면 보통씨의 히드로공항과는 어떻게 다른 지 견주어 보며 읽는 재미가 있겠구나.

    하이튼 들어가고 봤으니 다행이다.^^
    2010.09.04 09:2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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