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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글

아무튼 연말이다 (…!!!)

= 쥐씨 2010. 12. 22. 02:31


'포스팅이 고팠다'라고 말해봤자 그 밖에 할 말이 없다. 바쁘기도 했지만 둘러보면 나보다 바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음을, 그럼에도 꼬박꼬박 책을 내고, 논문을 내고, 기사를 쓰는 사람들이 제공한 컨텐츠의 밭 속에서 난 오른손에 레포트만은 꽉 쥐고 허우적거리면서도 "이분들이 참고문헌을 이렇게나 많이 참고한 것의 배경이 과연 '한가함'과 '틈만나면 따분함'때문일리가 있을까"라고 물을 때가 있었다. 가장 이상했던 나는, 무엇보다 쓰고 싶은 것을 안 쓰고 넘어가길 반복하는 나였다. 나는 <바빠도> 쓰는 아니 <바빠서>쓰는, 또는 <슬퍼서> 쓰거나 <외로워서> 쓰는 그런 애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연말이다. 지내고보니 연말이 왔다. 크리스마스트리란 것을 꾸미길 포기한지는 오래다. 엄마한테 왜 옛날에 매번 놓던 그 트리 안놓냐고 뭐라 하면서 제법 앙증 돋는 새 트리를 장만하긴 했지만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두가지 중 하나는 곁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그랬다. 짐작하듯, 하나는 크리스마스트리이며, 하나는 남자친구가 될 것이다. 트리에 둘러진 불빛이 반짝이는걸 보면서 '잠시'동안 정말 '여러' 생각을 했지만 이것까지 옮겨다 적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분명히 CF에서 튀어나와 케이크라던가, 도넛이라던가를 수줍게 들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음을 온 몸으로 기뻐하는 어린 소녀들과 나의 느낌은 다른 것이겠지만, 모두가 기뻐할 때 나만 체념하거나, 내 느낌만 탁하거나 한 것까진 아니니까.

블로그를 방치해둔 동안, 내 글쓰기의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다는걸 느끼고 있다. 우선은 트위터의 영향이다. 확인해보니 9월 21일에 계정을 만든 나는, 140자를 깔봤다가 140자에 손이 묶였다. 광고 카피도 짧게, 트윗도 짧게, 그렇게 재빨리 말로 어필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갔다. 또한 알딸딸했던 탁교수님의 코멘트 그 이후, "서해인씨의 글에는 자기만의 색깔이 없습니다." 그럴리가요, 그리고 이어지던, "그래서 아주 좋습니다. 그것이 가능성이란걸 보여줍니다." 이것은 이를테면, 지금 내가 선택해 쓰고 있는 문장들이, 최근 눈물방울을 떨구며 읽었던 박민규씨의 소설 속 문체와 은근히 닮은 문장들이라는 것. 그런 말이다. 모든 작가의 문체를 빌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곧 (모든 사람이 성립될 수는 없으니)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사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라 하셨다. 아- 그렇군요. 유감없이 부담없이 그래서 어쩐지 매력없이라는 맘도 아직 지울 수 없지만, 오늘은 온전히 박민규씨에게 영향을 받아 쓰는 그런 날이다.

딱 지금쯤, 지나가고 있는 <일년>을 돌아보는건 빼빼로데이에 나도 모르게 빼빼로를 집어 올리는 것과 다를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되돌아보기에 나한테 의미가 있는 시간단위는 4개월 정도가 될 것같다. "빡이 쎈 2학년 2학기"라고 불러도 좋고, "기적같이 집으로 돌아온 유럽여행 그 후"라고 불러도 좋은 시간. 학기중에 누군가에게 차 한잔 마시자는 연락이 올 때면, "저의 재수없는 스케줄러를 꼼꼼히 확인해보고 다시 연락줄께용"이라 답신을 보내곤 했다. 나만 바쁜거 아닌데 정말 왜이렇게 바쁜건지 그래서 보고있으면 재수없던 내 스케줄러. 

이번학기, 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착실히 학교를 가는 주5파였고, 매주 목요일엔 아침 8시수업이 있어서 5시반에 일어났으며, 서구형의 소규모 정예 토론식 수업을 지향하는 PBL수업을 2과목 질렀으며(졸업할 때까지 한과목도 PBL을 안듣는 여자들이 파다하다는 사실), 전공수업이 5개였으며, 그 중 한 수업은 15주 내내 만날때마다 3개의 과제를 들고 와야하는 수업이었으며, 어떤 한 주간은 6개의 레포트를 내면서 기말고사를 준비해야 했으며, 더 놀라운건 이게 고작 18학점짜리 시간표라는 사실이며... 

그 정도였다. 내년에 종합편성채널이라는 대부분의 시청자들에게는 생소한 채널이 우리나라에 도입되는데, 그것에 관해 조사하는 수업에서 "정부가 책정한 자본금 상한선인 3000억을 4000억원을 상향 조정하길 제시합니다."라고 터무니없이 무지한 비지니스 영역에 대해 발표하는 순간 짜릿했으며, 센스와 글빨이 폭발한 인간들만 모여있는 카피라이팅 수업 14주차에서 내 과제가 가장 잘 쓰여진 글로 카피되어 그들에게 배부될 때는 교수님을 백번 허그해드리고 싶었으며, 스크랩북 과제를 해야해서 기사를 200개가량 읽으면서 10년만에 다시 신문 읽는데 재미를 붙일 수 있었으며...

딱 이만큼이었다. 간만에 신은 구두가 발에 안 맞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더라도, 전공에 복수전공까지 따블로 나한테 잘 맞는 옷처럼 느껴지는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되씹고 씹어 보았던 정도. 절대 단물이 빠지지 않는 껌을 씹는 기분처럼. 그렇게 지냈다. 책도 보고, 콘서트도 갔고, 뮤지컬도 봤고, 커피도 마시고, 파스타도 돌돌 말아 먹고, 간만에 용돈 외 수입도 생기면서. 부족한 것 없이, 가장 대학생 답게. 물론, 돌려받은 레포트 점수에 안그래야지 하면서도 당연히 일비일비 하면서도, 그렇게 내나이스럽게. 하지만

'답다'와 '스럽다'는 것 역시 내가 내린 정의에 지나지 않다는걸 알게 된건 얼마 되지 않았다. "세계라는 건 말이야. 결국 개인의 경험치야."라는 박민규씨 소설 속 구절처럼. 다른 대학생의 삶, 아니 모든 영역에 있는 사람들의 삶과 재볼 것 없이, 만족스럽고 살아있었던 그런 시간

.....이 지난 지금은 겨울방학의 어느 날이다. 못 말리게 허무한 그런 날이다. 그리고 지난 사개월동안 전혀 몰랐던 내가 잃어버린 것들도 생각나, 하나하나 꼽던 손가락을 금방 감추게 되는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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