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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이다. 6시 50분에 눈이 떠진다. 이정도면 착한 기상시간.
흘러나오는 BBC 뉴스를 들으며 아침을 먹는다. 오렌지가 이백개쯤 쌓여있는 더미에서 한개를 집어 정말 상큼하게 물어먹었던 기억. 아침 식사 후 노트북을 들고 라운지에 갔는데 잘 잡힌다던 와이파이가 잡히질 않는다. (노트북 때문에 영국에서 정말 애먹었지...) 원래 오늘의 오전 일정은 노팅힐에 가는 것이었는데
어제 너무 피곤한 나머지 다운받아놓은 영화 <노팅힐>을 보지 못하고 잠들었으니 가는걸 유보하기로 한다. 대신 어제 그 짧은 외출에서 1분에 한번씩 마주쳤던 빨간색 2층 버스가 아른거려 버스타고 시내 한바퀴 돌아보기로 일정을 체인지.





숙소 앞에도 2층 버스가 많이 지나다니지만 가능한 주요 관광지들을 스쳐가는 노선이 포함된 버스를 타야겠다고 생각. 리셉션에서 얻은 지도를 살펴보니 대충 paddington역에서 시작하는게 좋겠다. 튜브를 타고 패딩턴역으로 이동해 15번 버스에 오르고 2층으로 냅다 뛰어 올라 앉았다. 대략 60분쯤 걸리는 이 노선은 패딩턴역->옥스포드스트리트->리젠트스트리트->피커딜리서커스->트라팔가스퀘어->차링크로스역->세인트폴성당->런던탑->타워브릿지 순으로 지나는 듯. 좋다좋다하며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본다. 2층은 창문이 열리지 않는 구조. 사진을 찍어도 반사반사. 그래 편안히 런던을 감상하자.  








패딩턴역에서 버스를 타러가는 길 건너편 샵들. 아름답구나.






Tower of London에서 내리니 런던 탑이 보인다. 회색 하늘에 회색 성이구나. (-_-) 성 뜰에서 칼싸움 이벤트에 임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재미있니. 난 별거 없는거 같아. 조금 걸어보니 타워 브릿지.







하늘이 하늘색이었으면 좋겠는데 몇번을 찍어봐도 아쉽게만 담길 뿐. 6살 때 올림픽 대교를 처음 봤을 때보다 조금은 덜한 감동과 함께. 아 그래도 기념샷은 남겨야지. 여기 런던이잖아! 넓은 어깨와 부은 얼굴의 셀카. 한장 찍자마자 비가 후두둑. 천둥까지. 아 너무 춥구나.





브릿지 한켠에서 oyster를 팔고 있다. 으익 오이스터카드는 굴카드였단 말인가. 생굴을 먹는 사람들. 사먹을 의향은 충분했지만 사실 생굴보다야 홍합탕이 생각나는 날씨.






그리고 기념품 가게. 색의 배합이 좋은 접시와 찻잔들, 그리고 영국을 상징하는 저금통들.







다시 15번 버스를 타고 옥스포드 서커스에 살짝 못미치는 곳에서 하차. 당장 긴소매를 사서 걸치자라는 생각밖에 안나는. 아무가게나 들어가보고 봤더니 그곳이 ZARA. 내가 좋아하는 곳. 마침 세일기간이라 25.99파운드 짜리 가디건을 5.99파운드에, 남방까지 두벌을 12파운드에 쇼핑 와우. 닥치는대로 옷을 걸치고 한블럭 더 걸어 EAT에 들어가 점심을 먹기로 함. 런던에서 두 블럭 차로 심심찮게 마주칠 수 있는 곳. 신선한 버전의 패스트푸드 가게랄까. 회사원들이 바글바글한데 딱 한자리가 남아있다. 샌드위치, 새우인 척 하는 게살이 듬뿍 들어간 샐러드, 오렌지 쥬스 이렇게해서 8.3 파운드. 샐러드는 왜이렇게 맛있는거야.






점심을 먹고서 골목들을 둘러보고





2층버스는 벌써 두번이나 탔는데도 마음 속의 로망.





코로나로 땜질 되어있는 택시. 아, 영국의 자동차들은 최고의 광고 매체. 코로나 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택시들을 볼 수 있었음. 아, 250주년 됐다는 저 가게 좀 들어가볼까.





250번째 생일을 맞은 곳은 장난감 가게. 무차별적으로 비눗방울을 날려대는 한국의 장난감 가게 PR과는 달리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듯한 이들의 쇼맨십. 왼쪽여자는 동화 같은걸 들려주고 있고 오른쪽남자는 매직을 부리고 있다.





온갖 장난감들 속에서 나보다 키가 한뼘 더 큰 낙타가 눈에 들어옴. take me home today. 오늘은 나를 데려가 달라면서 1500파운드라니. 오마갓. 그래도 남자가 새하얀 곰인형을 들쳐 업는건 이젠 구닥다리 로맨스 아니던가. 낙타인형을 타고 와서 청혼하면 기꺼이 받아주겠어. 이런 망상도.


이후, 피커딜리 서커스-그린 파크 부근을 정처 없이 걸어다니다 '수요일에 딱 5시간만 오픈'한다는 첼시 피직가든의 약초 재배원을 구경하러 슬론스퀘어역으로 이동. 하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정말 기쁜 맘으로 입원할 수 있겠다 싶은 외관이 이쁜 병원을 지나쳤다. 해가 지기전에 사우스켄징턴으로 다시 이동. 이때까지는 걷기, 또 걷기로 채워진 심심한 여행. 여행이 끝난 후 이전엔 전혀 읽지 않았던 몇 권의 여행 관련 서적(대체로 가이드 북이라기보단 여행을 정의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에세이들)을 읽었는데 그 중, 정수복의 <파리를 생각한다>에선 '아웃사이더로서의 산보객'을 자청해 낯선 이국을 여행하는 것에 대한 예찬이 담겨있다. 그래, 헛걸음은 없었던거야.  
사우스켄징턴은 자연사박물관, 왕립 음악대학, 메모리얼 기념비 등이 있는데 이 지역에서 찍은 사진은 모두 증발(;). 자연사박물관에는 뼈대만 남은 공룡이 전시되 있다는데 궁금증만 안고 있었을 뿐 들어가보진 않음. 하루이틀짜리 여행이 아니라면 '거기에 입장을 하지 않는게 여러모로 진리'임을 점차 느끼게 되는 순간이 온다. 잘했어. 







참, 사우스켄징턴에 가기 전 십분 차이로 하늘이 저럼.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가 대기하던 나. 꼴초 수신자가 다녀갔는지 쾌쾌한 담배냄새 때문에 간지러워진 눈을 비볐더니 땅으로 낙하하는 렌즈. 외국 흙이 묻은 내 렌즈 (엉엉). 빗방울이 보슬보슬해졌을 때쯤 근처 멀티샵으로 뛰어 들어가 렌즈 클렌져를 찾는데 대체 'EYES' 코너는 어디니. 샵 왜이렇게 넓니. 몇 분 후 1.99파운드로 클렌져를 구입해 샵 앞에서 뿌려가며 끼웠다. 유료 공중 화장실은 또 언제 찾아 들어갈꺼야 그냥 끼자 체념체념.

6시 30분에 숙소로 돌아와 원래 계획은 두시간만 자고 저녁이 되면 야경을 보러가자였는데 7시에 자서 7시에 일어나버림. (12시간 경과) 런던 맛집 리스트 뽑아가면 뭐해. 저녁 먹을 힘도 없는 여행 이틀차. 그때까진 이정도 수위로 여행하면 한국 돌아갈 때쯤 슬림해질 줄 알았지. 그랬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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