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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위스에 온 이유는 분명하다. ‘베르니나 익스프레스를 타기 위하여. 대개 주변의 (모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서유럽 초행자들이 인터라켄에 가 심장 터질 듯이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융프라요우흐의 눈 덮인 정상지점에서 신라면을 먹는 기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들은 적극 참조하겠다는 듯 듣고 있으면서도, 나는 꾸준히 그 기차에 대해 공부했다. 그래서 기차만 타고 가도 괜찮기로, 인터라켄은 루트에 넣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다 스위스에 온다고? UN본부 보고 가삼이라는 두다리 건넌 지인의 제안에 "네-_-;"하고 제네바’에 들르게 된 것이다.

 

22일의 내 여행은 머리부터 꼬리까지 모두 계획되어 있는 상태여서 들르게 된 것이라 말하기는 뭣한 감이 있지만, 제네바, 별로 기대 안됐었다. 두 다리 건넌 분이니 기실 나는 모르는 분인데다가, 그 지인분 가정의 구성원을 처음 들었을 때 ?‘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모의 절친이신, 65세를 바라보시는 굉장히 에너지 넘치는 한국인 K아줌마

UN 본부에서 일하시는 파키스탄 Q아저씨

중학교 2학년생 늦둥이 아들 D

 

이지젯 비행기를 타고 니스에서 제네바로 가는데는 한시간정도 밖에 걸리질 않았고, 처음보는 K아줌마를 만나 적당히 으리으리한 집으로 모셔졌다. 사실 집의 구조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들어설 때 정원이 있었고 키가 큰 잔디들이 이상한 월드 앨리스의 한 장면처럼 반듯반듯하게 조각이 나 있어서 그것만 흘깃 보고도 으리으리하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올 대선 M후보의 슬로건인 저녁이 있는 삶“(이전보다) 잘사는 삶을 우리에게 끌어오듯, “정원이 있는 집잘사는 집을 연상시키는 거랄까.

 

저녁으로는 스위스의 전통음식인 치즈 퐁듀를 먹었다.

치즈가 정말 짜죠?”

-“네 정말 짜네요

뭐라 말할 수 없이 치즈가 짜다. 빵이 폭신했는지, 딱딱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음 날, Q아저씨의 가이드 하에 UN본부에 들어갔다. 아저씨의 전용 카드를 긁고. 내가 평일에 왔더라면 능력있는 직원들의 분주한 업무현장을 보여줄 수 있었을텐데 하며 아쉬운 기색을 보여주셨는데,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고요했다.

 

그것으로 메인 이벤트는 끝이 났다. 치즈 퐁듀와 UN본부. 집에 머무는동안 중간중간 집어 먹었던 스위스산 초콜렛이 참 맛났던 기억. 스위스에서 수십년째 살고 있지만 스위스가 정말 사람 살 곳이 아니라는 K님의 넋두리, (개개인의 집마다 잔디를 조각내야 하는 부분이 있고 일직선으로 깎아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2주 단위로 해놓지 않으면 상당량의 벌금을 물게된다는게 대표적인 예.) 스위스와 동서유럽권 역사에 대한 K님의 브리핑, 상당히 똑똑하시다 =_= 하면서 듣고 있었는데 그 이후로 연수생활을 하는 기회를 맞게 된 지금은 이런 나름의 결론을 가지고 있다.

 

타지에 장기거주한 한인들을 만나게 되면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그냥 들어야 하는 것이다.

내 앞에 있는 그들의 입에서 말이 끊이질 않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야 싫은 표정 짓지마!

어쨌든 너 지금 여기서 신세지고 있잖아!

라고 자기 암시를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813일 저녁, 나는 제네바에서 스위스의 동쪽 도시 쿠어로 가는 기차를 탔다. KQ님이 힘내라며 합작해서 사주신 도넛을 입에 물고. 신세를 진다는 것은 내 방식대로 신세를 질 수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고, “편하게 내 집처럼 내 방처럼 지내다 가세요라는 말을 그대로 믿고 실행에 옮길 수 없는 것임엔 분명하지만, 어쨌든 타지에서 만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모두 고마운 마음이다. 도넛은 맛있는데, 기차 창문에 비친 도넛은 뭔가 슬프게 생겼다는 걸 탓하면서, 그 날 나는 떠나고나서 처음으로 잠깐 울었던 것 같다.

 

 

아참, 제네바에서의 사진은 다 날아갔다.

별로 아깝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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