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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에 학교로 돌아와보니 직전 학기에 붙어다녔던(붙어다님; 의 기준은 도보 거리 30분 이상의 스타벅스를 주2회 이상 같이 갔는가로 산정됨) 한국동생 J가 돌연 한국으로 돌아가고, 졸업식 때 눈물을 쥘쥘 흘리던 E는 다른 전공으로 학위를 재취득 하겠다며 내 옆방으로 컴백했다. 사촌언니인 Y언니는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보내면서 말도 안되게 꼼꼼한 일정에 맞춰 근무를 하고 있고, 사촌동생 D는 3년제로 예정된 대학원 과정에 입학, 꿈은 이성적으로, 미래의 아내상은 감성적으로 키우고 있는 중이다. & Commercial writing(=copy writing)전공생인 애리조나 출신 C와 친절하고 말주변 좋은 미시간 출신 L과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졸업반, 그 중에서도 미국 4위권 안에 든다는 학교의 간호학 전공이라서 졸업 시험 패스를 위해 침대에만 꾹 눌러 앉아 공부하며 주고받는 인사라곤 없던 직전 학기 룸메이트 텍사스산 M을 생각해보면 지금 나는 정말 값진 관계망 속에 있는거다.

만날 사람들을 만나고나서,
4개월 가까이 뉴욕, 엘에이, 멕시코 등지를 돌아다녔던 나는 이제는 정신줄을 여행 모드에서 공부 모드로 갈아 끼워야 한다는 ‘의무’와, 부모님의 경제력으로 누리는 타국 생활을 그럴 수 없는 분들을 생각하며 감사히 살아내야 한다는 ‘당위’와 미국 땅에서 오리지널한 영어를 배우는 효율성의 극치를 달성해내야 한다는 ‘목표’같은 것들이 한데 뒤섞여서, 결론적으로 두 마이 베스트 하면 되고,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돌아온 곳은 곧 직전 학기,‘룰을 온 몸으로 적응하기’에 어려움을 겪었던 pensacola christian college였다. 9월 둘쨋주가 지나갈 때쯤 이런 생각을 했다. 하반기에는 다른데서 공부할 껄 그랬나, 연수생으로서 말 그대로 고학점 취득이 주된 문제가 아니라면야 두 학기를 같은 곳에서 보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덕과 종교, 착한 것과 의로운 것을 구별해 내는 세심함이라곤 없이 전개되는 설교가 주8 설교 중 반절이상을 넘어가는걸 지켜보고 있다보니, 우울했다. 새삼 그런 것도 아니었지만 “이제는 뭐가 날 어렵게 하는지 정말 제대로 알겠다”라며 상대방에게 접근하니 “니 말은 영어로 그게 들린다는 거잖아 이제는”이라는 정확한 지적이 되돌아왔고, 컨텐츠에 동의하지 말고 컨텐츠에 수단인 영어를 배우는 게 너의 목적이고 너가 이 곳에 있는 이유라는 비슷한 맥락의 말을 엄마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다. 아니 그렇지만 내가 특정 시기에 특정 언어를 배우라고 사전적으로 조직된 생물은 아니잖아요. 나는 그렇게 구조화 되어있지 않아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우리나라와는 질감이 다르고 농도가 다른 플로리다의 햇살을 나날이 쬐면서도 이렇게나 병동에서 창 바깥을 겨우 내어다보는 이의 어둑어둑한 마음을 가질 수는 없는거잖아.

학교 도서관에 왜 해리포터 전집이 구비되어 있으면 안되는건지, 인터넷이 차단되어 있어 그래픽 디자인 과제에 필요한 이미지 파일을 내려받을 수가 없고 온갖 저널 사이트가 접근 금지 처리 되어 있는 공부 환경은 학생이라는 이름의 누구를 위한 것인지, 치마길이에 관한 컨텐츠를 성경적 원리로 풀어 설교하는 것도 모자라 동일한 내용을 문어체로 바꾼 공지를 2주 가량의 금요일 밤에 걸쳐 안내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수업시간이나 도서관 안에 커피는 커녕 물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는 것이나, 예배 시간을 25분이나 남겨두고 학식 문을 닫으며 안 일어나면 점수를 깎겠다는 것 등. 그냥 눈 딱 감고 말 잘들으면 편하잖냐 할 수도 있겠지만 이유를 모르고 따라야 하니 역겨운 반발심이 계속 드는 것이다. 학교 측은 이 모든 규율의 전반에는 단 하나의 가치, 단 하나의 이유가 심어져 있다는 입장인데 줄여서 말하면 “그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 좋으셔”라는 것이다. 이럴 때마다 주말 학식 일회용품 사용, 분리수거 개념 전무, 24시간 냉방 가동 시스템에 대해서는 “창조자께서 제 6일의 창조주간에 걸쳐 만들어 놓으신 대지가 상하도록 일조하는 일들을 보시면서도 참 좋네, 참 좋더라 하실까요?”라고 소리지르고 싶어지는 것이다.

구조의 완전함, 특히 종교색을 가진 구조의 경건성에 이만하면 됐다 할 수 있는 정도의 끝이 있기는 한 건지 묻고 싶다. 사실상 없으니까. 인간들이 생각했고 그에 기반해 인간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모두. 유지하고 싶은 하나의 가치가 생겼을 때, 그것을 종교적 신념으로 포장해서 나는 옳고 너네는 그르다라고 판단, 그 판단의 결과들을 차분하게 통보해주는 것은 크게 어려울 게 없는 일이다. 이 곳은 커뮤니케이션의 시대라고 불리는 이 시간들을 거스르고 있다. 논의와 탐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왜? 너네는 아마도 틀렸을테니까. - 구조의 거대함 앞의 일개 개인의 느낌이라는게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구조에 동화된 이들은 너도 끝없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하다보면 어쩔 수 없음의 본질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럴 때 나는, 구조에 부대꼈던 처음의 심정을 들을 수 있겠냐고 하지만 지금은 모두 잊어버리고 난 후라고 말한다. 나는 이해할 수 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은 말 그대로 솟아날 하늘도 없고, 숨어버릴 지하 벙커도 없다는 것이니까.

그래서 나는 우울해졌다.
9월 중순이 되니, 심지어 죽고 싶었다.
내일이 되면 내가 왜 이렇게 괴씸한 생각을 했지 하면서 다시 내가 갖추고 있어야 할 것들 중에 제일 힘이 쎈 ‘당위’로 나를 둘러싸버린다든가 하고, 마지막으로는 머리를 한 대 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순간순간 머리쓰는 과정을 생략하고 딱 한가지만 대차게 실천하고 싶었다.
‘소멸’

바싹바싹 입이 마르던 2012년 9월이 아!직!도!!! 지나가고 있다. 광야. 있는게 없는 곳. 지금은 그런데를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아무렴 지구에는 광야도 있고, 이런데도 있는거지. 그리고 지금 여기를 걷고 있는 사람은 딱 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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