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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보면 진짜 웃긴 얘기. 조그마앟게 분통이 터지다 조그마앟게 웃음이 피어오르는걸로 늘 맺어지곤 하는 그런 얘기.

나는 십여일전쯤 같은 캠퍼스에서 먹고 사는 사이인 사촌언니 G언니에게 버럭 화를 냈고, 언니는 얘가 그간 뭔가를 차곡차곡 쌓아와서 한번에 폭탄을 던지나 하는 인상을 받았으므로 내게 급히 휴전 요청을 했다. 이틀 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구일 전인가 팔일 전인가, 우리는 달을 쳐다보면서 비교적 감정의 전쟁을 잘 종전시켜냈다.

여기서 다시 종전일로부터 만 하루 전으로 시점을 이동해보면, 나는 말하다보면 끝내 내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존재였지만 언니는 이기고 지고 같은 걸 싫어하는 존재이기에 우리 둘을 모두 다 파악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친구 E에게 구조 요청을 걸었다. "이번에는 내가 싸움에서 이기고 싶은건 아닌데 어떻게 해야 이 싸움을 현명하게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해?"부터 시작해서 "너는 우리 언니랑 한번도 안 싸워봤어? 왜 나만 맨날 언니한테 시비를 걸게 되는거지? FUCK!" (물론 빡유는 이 죽일놈의 내 성질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그 언니를 향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까지...

"Hayne. 내가 방법을 좀 알려줘?
지금까지 남이 말 할 때 틀린게 크게 보이고 맞는게 작게 보였었지? 그 두개의 순서부터 바꿔! 맞는말을 크게 봐. 그리고 'i agree you'라고 말해

그리고 니가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i need you'라고 중간중간 말해"

당연히 나는 언니한테 나는 여기서 유학생활 끝내는 날 까지 가끔은 언니가 필요하기도 해. 라는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상황을 마무리 지었지만. 이 친구의 조언이 앞으로 오년 앞을 내다볼 때 쏠쏠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은, 꼭 기억해야 할 것 같은 다짐이 들면서도 (....)


야 나는 너보다 오리지널리티를 더 좋아해!
라고 혼잣말을 했다.

1. 나는 캐! 독립적인 사람.
여기서 독립과 고독, 이기주의 등의 개념이 엇비슷한 것들인가? 싶어질 수도 있겠지만 고독을 즐기고 이기적으로 비춰질 수 있음에도 포인트는 원래 나의 것이었던 것은 확보해놓기, '오리지널리티 지니기'라는 것.

2. 대표적인 오리지널리티로는 나의 시간과 나의 공간이 있는데 이런 의미에서 문 잠금 기능이 없는 기숙사 방에, 심지어는 '같은 화장실을 공유'하는 4517호에 사는 E가 4515호인 내 방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이 가끔은 너무 미운 것이었다. 근데 예고하고 오라고 말하기엔 너무 가깝게 살아서 이 문제는 내가 일전에 양보.

3. E는 인도네시아 출신 답게 핫~한 음식을 즐기는데 지난 여름방학 때 뉴욕에서 공수해온 인도산 쏘 핫 칠리소스를 늘 학교 식당에 물고왔다. 처음 그 소스를 본 날엔 호기심을 보이고 한입 먹어보았던 나는 다음날부터는 "나는 바베큐소스나 머스타드소스 먹을래"하고 인도산 칠리소스에게는 분명히 안녕을 고했다. 그런데 이후 한달간 일주일에 적어도 7번은 같이 밥을 먹는동안 E는 늘 내게 "you want some?"이라는거다.

"노땡스"
"그거 김치 좋아하는 나한테도 너무 맵다구"
"아니 괜찮다구"
"야 안 먹어도 된다고!!!! 안 먹는게 가능하다고!!!!!!"
"맞고싶냐"

등등 온갖 의사 표시를 해도 어김없이 다음 식사 때 들려오는 그 질문 "you want some (this hot sauce)?"

그러다 어느날엔가 이런 말로 방어를 했던 기억이 난다.
"난 내가 지금 먹으려는 음식들의 오리지널리티를 사랑한다고. 그걸 지켜주고 싶다고. 얘네가 요리되어 나왔을 땐 그 맛 그대로 외부의 소스같은건 없이 먹어 줘야하는 의무감 같은걸 가졌다고 나는."
그러고보니, 최소한 원래 가지고 있는건 지켜줘야 한다는 나의 신념이 밥상에도 여지없었던 것... 물론 샐러드 드레싱 좋아한다. 근데 적정수준 이상으로 매운맛을 자랑하는 E의 그 소스는 미각을 잠시간 잃게 만들어서 분명히 음식의 오리지널리티를 앗아가는거다. 나는 그게 좀 음식에게는 불공평할 수도 있을 문제라고 느껴왔던거다.

4. 다시 전쟁얘기. I need you라고 말하라는건 "나는 나의 오리지널리티로는 풀리지 않을 문제들에 너의 오리지널리티를 한번 가져와 대어보려고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얘기다.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남 앞에서 나는 절대로, 절대로 눈물을 보일 수 없다. 운다는 것은 나의 것이 모두 녹아 흘러가버리는 느낌이다. 계곡물에서 놀다 벗겨진 신발이 떠내려가는걸 마냥 바라보는 기분 같는 것.

5. 그런데 오늘 저녁엔 한국에 있는 친구 H에게 급작스럽게 전화를 걸고 싶었고, 통화 상태가 안 좋은데 정말 걸러지지 않은 내 오리지널리티를 공개한 것 같아 끊고나서 좀 부끄러웠다.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 시간 좀 가주게 하면 안 되? 왜 1년이 1년 같지 않고 3년 같은거지? 라며..
이 문제는 H가 맘 편하고 좋은 친구라는 사실에서 잠깐 떠나, 저렇게 20분동안 무의미한 말을 반복하다 끊은 것은 사실 내가 펑펑 운걸로 해석해도 다름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는 지금 주어진 시간을 잘 살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내 오리지널리티가 먹히지 않는 긴긴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

6.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시간을 빨랫줄에 널어놓고 싶어질만큼 바쁜 시간들을 살고 있을 때가 오면,
그 때의 나는 어떤 사람이려나.
지금은 어떤 시간으로 남아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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