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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에서 스웨터를 꺼내어 입을 수 있는 계절이 되었다. 삐져나온 굵은 올을 스웨터의 끝으로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영어와 내가 하나의 올로 얽혀 들었던 출발점을 살펴보자면, 그것은 가시적일 수도 있고 때로는 관념적일 수도 있다. 영어 시험에서 XX점을 받아 머리를 땡 얻어 맞은 듯한 순간부터 일수도. 크리스마스 캐롤송을 처음 듣고 흥얼거렸던 때부터 일수도.

한국을 당연히 잘 알지만, 룸메이트들은 내게 이렇게 묻는다.

"Have you ever followed sort of English curriculum?"
(여기 오기 전에 영어를 정규적으로 공부해 본 적이 있어?)

나(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한국 풍토는 영어를 중요시해서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무조건 배워. 요즘은 유치원생들도 거의 필수야.”


스물 다섯에 미국에 오기 직전까지의 나의 배경 화면은 이러했다.

-대학교 신입생 때 필수 교양 과목으로 영어 쓰기와 읽기 같은 제목을 가진 걸 6학점 들었는데 C를 받음. 에세이 쓰기에서 많은 점수를 잃었다.

-토익을 쳐본 적이 없다. 2010년에 삼개월 간격으로 <토플>을 두 번 쳤다. 혼자서 유형을 파악할 수 없을 것 같아 해커스 토플 기초, 입문, 중급반씩이나 다녔다. 7-8명이 모여 악착같이 징수한 벌금으로 뒷풀이서 술 퍼마시는 루트를 몇 번 반복했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결과를 논외로 치고, 투자한 시간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자아 충족감을 주던 것이 ‘토플 공부’다. 하루에 10시간씩 영어에 노출 되어 있었고 잠을 너무 못자서 코피가 터졌다. 결과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국내 4년제 대학의 교환학생 제도가 요구하는 보통 수준의 커트라인에 미치지 못했다. 두 번 다! 

-미드 modern family와 미국 뉴스를 놓고 공부하는 해커스의 <종합청취영어>도 4-5개월 정도 수강했다. 월수금 저녁 수업과 오전 8시 매일반을 왔다 갔다 하며 들었는데, 오전 8시반에 다닐 때는 무슨 배짱이었는지 재학생이었고, 5시에 일어나서 씻고 강남역까지 서서 자며 가다가 수업 듣고, 다시 지옥철을 환승해 학교 오전 수업 들어가고 그랬다. 번번히 지각하는 걸 토로해도 ‘너는 자아계발의 종결자’라는 반응이 돌아오던 낯 뜨거운 때였다. <종합청취영어>를 들은 후, 미드에 잠시 재미를 붙였다. 그렇지만 평균 20회 분량의 한 시즌을 종결하거나 자막 없이 영화를 트는 것에는 흥미가 없었다. 당연히 CNN 뉴스를 찾아 들을 리가 없죠?

-고2였던 학생이 고3 여름 방학을 맞을 때까지 과외를 해주었다. 경력은 이렇게 고3 1명, 10개월 뿐이다. 모의고사를 치르고 온 학생이 “계 터졌어요!”라고 말할 때 5등급 성적표를 기쁘게 안겨주는 정도였기 때문에, 5형식을 제외한 기초부터 문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이 과정을 통해서 내 문법 실력이 (-_-) 매우 단단해 졌다는 소식이다.

-입시 수능을 세 번 치렀다. 마지막 시험에서 1등급이 나왔다. 메가스터디 심우철의 인터넷 강의와 재수 종합반 각 9개월씩 다니며 엄청난 양의 영어 문제 풀기 스킬을 습득했다. 연당 한권 한정인 EBS 수능특강을 세 권 풀었다. 어휘 실력이 극도로 좋아졌다.

-대1 방학 때 한국말 못하는 뉴저지산 사촌 오빠가 한국에 놀러온 것을 계기로, 동기 몇 명을 모집해서 일주일에 2번씩 <프리한 스피킹 수업>을 진행했다. 주제를 놓고 프리 토킹을 하는데 당시엔 매 순간 영어로 말을 해야 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대학 모교에서 진행되는 <해외 명강의 번역 프로그램>에 1년 반 참여했다. 직접 듣고 번역할 때도 있었지만 소리를 인식하고 자막으로 뱉어주는 현대 과학 기술 덕을 많이 누리며 꾸역꾸역 발번역을 했다.

-엔씽크의 'Pop'과 웨스트라이프의 'My life'를 이만번씩 들으며 자랐다. 각별히 좋아하는 팝 가수는 없었는데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영어 발음이 좋아졌다. 이규원이라는 이름의 친구가 있었는데 'Good bye'의 가사 중 ‘Lead you on~’을 '리듀온 이규원' 하면서 일년 넘게 알짱알짱 말장난을 치긴 했지만, 영어 가사를 한글말로 적는 행위가 촌스럽게 느껴져서 굉장히 기피했었다. 들으면서 따라 불렀다. 영어 공부를 해야하나? 라고 느낀 순간은 중딩 때 신화 5집의 트랙리스트를 보다가 <Reminisence>라는 제목을 맞닥들였을 때.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뭐 배웠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과목으로서 시험을 봤는지도 기억이 잘 안난다.

-어렸을 때부터 어렸을 때까지 엄마가 외국인계 회사에서 일하셨던 탓에 좋은 발음을 몇 번 건너들었다. 발음은 처음부터 똑바로 배워서 그런지 또래 친구들이 흔히 걸려 넘어지곤 하던 r발음과 l발음의 구분 등에서 곤혹을 느낀 적은 없었다.

-원서를 읽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해리포터 전집을 몇 번이나 읽었지만 원서에는 손이 꺼려졌다.

-공교육의 정규 교육 과정이 스피킹을 홀대하는 탓에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예상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말을 잘 못하는 수준이었다. 또한 영작 수준이 끔찍했다고 한다. 온건주의자인 엄마가 유일하게 엄해지실 때는 내가 적어 놓은 영어 문장을 바라보실 때.

-영어가 세계 공용어로 통용되는 현재의 시장 상황을 싫어해본 적은 없다. 영어에 애정이 있다. 이게 우리나라 말에 대한 애정에는 한참 밀리지만.

간략정리를 해 보면,
읽기: 수능 지문을 빠르게 독해할 수 있으나 읽을거리를 찾아보지는 않는 정도
쓰기: 끔찍한 영작 수준. 문법 때려 맞추기는 완벽했던 정도.
말하기: ‘파인 땡큐 앤유?’에는 진부함을 느끼지만 딱히 그 다음에 할 말도 못 찾는 정도.
듣기: 게 중엔 가장 수려한 수준. 표준 발음의 소유자가 하는 말은 알아먹는 정도.

총평,
원할 때마다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감사한 환경을 누렸다.
몇 번의 영어 능력 시험을 준비해보았고,
영어를 가르쳐 본 적도 있지만,
오래도록 기초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영어 공포증은 없는 편이었지만,
곧 죽어도 한국에서 직업을 가져야 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영어가 결정적인 환경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상황은 만들지 않기로 했다.


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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