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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약을 먹고 새벽 다섯시 삼십분에 일어났다. 직전 포스팅에서 언급했듯 벌집모양으로 천장이 오픈 되어 있는 이 방에서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는 건 얼마나 다른 여행자들에게 누가 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자기 직전에 벌떡 들었기 때문인지, 소리를 듣고 2초만에 깼다. 한칸짜리 침대에서 내가 비비적 거리자 바로 옆방 사람이 비비적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아아아악 이게 뭐야.

 

헤어드라이기를 쓸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나는 그 날 머리를 감지 않기로 결심했다. 뭔가 잔뜩 눅눅한 기분이 들었지만 뉴욕은 빅토리아 시크릿 향기와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악취가 동시에 후각을 당겨주는 도시니까. 우린 6시 30분에 숙소에서 나와, 7시 10분에 공연장 앞에 늘어서 있는 웨이팅 대열에 합류했다. 

 

 

진씨크와 나는 몇 가지 공연을 후보에 두고 있었는데 첫번째는 '찰리 채플린'. 2012년에 따끈하게 개막. 하지만 우리는 무성의 원작에 기반한 작품보다는 조금 더 신난게 필요했기에 패스. 두번째는 '푸에르자 부르타'. 클럽 st인데 생각해보니 이건 브로드웨이 언니오빠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패스. 그렇다면, 마지막 '원스'

 

12월 27일은 남녀 캐스트가 모두 '대역'으로 쓰이는 날이었다. 같은 배우의 것을 두번 보는 것 보단 서로 다른 배우가 보여주는 캐릭터 해석을 캐치하는 걸 좋아하는 내 취향으로서는 이 날이 조금 운명적이었던데다가... 첫 공연을 보았던게 6월 27일이었는데, 이 때는 정확히 반년 후인 12월 27일 '_' ! 내가 원작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진씨크와 그 영화 사이에는 불편한 사정이 엮어 들어가 있었던 점도 여러모로 운명적이었다. (운명론이 이렇게 헤플꺼면 개나 주렴.) 여름에는 아스팔트 바닥에 충분히 앉아 있을 수 있었는데, 어젯밤 같은 돌풍은 아니지만 그래도 위력이 있는 미풍이 불고 있는 새벽이었다. 그 와중에.

 

"야 어떡해 나 숙소에 지갑 두고 왔어."

"뭐? 내가 달러 빌려줄테니까 같이 써."

"아니 그 벌집모양 천장이 신경 쓰여. 누가 거기를 타고 들어와서 내 지갑을 가져 가지 않을 수 없지는 않잖아."

"그렇겠다. 얼른 갔다와 언니."

(,,,,)

 

 

 

 

 

메트로를 타고 숙소에 다시 왔다 갔다, 족히 2시간 50분의 웨이팅이 지나 언제나 그렇듯 박스 오피스는 오전 10시에 문을 열었다. 손이 꽝꽝 얼어서 자꾸만 지폐가 두장씩 집히는 것이었다. 맨 앞 1-2줄의 러쉬티켓이 sold out, 스탠딩도 sold out, "이제 남은건 box seat 뿐이야." 라는 매표소 아저씨의 말에, 아 당연히 저번처럼 또 스탠딩으로 볼 줄 알았는데 앉아서 볼 수 있다니(~) 하고 조금 룰루랄라 했다. 시야각이 달라지면, 같은 공연을 보더라도 얼마든지 완벽하게 다른 공연을 보는 경험이 될 수 있으니까.

 

 

 

 

 

 

오픈하자마자 들어온 Chipotle.

어제 점심은 쿠바 음식이었는데 오늘 점심은 멕시칸 음식. 하하핫. 토핑을 계속 추가추가 한다음에 구아카몰로 덮어주는 구성을 택해는데, 치폴레는 구아카몰을 매일 덤프 트럭 한 대 만큼은 만들어 놓은 후, 후라이팬만한 사이즈의 숟가락으로 퍼주는 일을 즐기는 것 같다.

 

식 후, 모마 디자인샵 구경-66가부터 30가까지 걸어 내려오기-뉴욕 공립 도서관 둘러보기 등을 순차적으로 했다.

Urban outfitter에 들어가서는

"언니 진짜 아무것도 안 산다고?
언니가 이런 패턴의 전개를 좋아하는 걸 내가 아는데 진짜 안 산다고?
이거 안 사고 한국에 간다고 레알 트루?"

같은 소리를 들으면서 저 한국에는 없는 패턴의 티셔츠를 사 말아. 하고 정말 혼자 많이 고뇌
(...했고 이 여정에서으 사진은 유실되었다.)

 

 

 


 

 

오후 네시쯤 윌리엄스버그의 베드포드 에버뉴. 먹구름이 다시 몰려오고, 나는 피곤을 몰아내지 못했다. 뜬금엇이 오후 네시에 지쳤다니? 진씨크를 빈티지 편집샵에 넣어 두고, 여덟 블럭 정도를 걸어서(-_-) 커피를 마시러 갔다. 2012년의 마지막 블루바틀커피.

 

 

 

 

 

 

제일 좋아했던 뉴올리언스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서 다시 혼자 있을 영혼에게 돌아가는 길. 다다다. 손이 너무 시렸다. 오후 여섯시, 이제는 정말 꾸럭꾸럭한 날씨. 이틀간 단 십초의 여지도 주지 않고 끊임없이 거리를 걸으면서 얘기를 늘어 놓다가 윌리엄스버그 브릿지가 보이는 허드슨강으로 나가서는 한동안 말이 멎었다. 야경을 보기엔 덜 어두웠고, 어둠 속에서 먼 데 있는 구조물들을 응시하기엔 덜 맑았지만, 이 도시에서의 마지막 밤이 오늘이라는 사실이 나는 끔찍이도 싫었다.

 

기분 전환,

고기 먹자,

 

 

 

 

fette sau

블랙 앵거스 비프 1/4

듀록 폭립 1/4

듀록 폭 벨리 1/4

+포테이토칩, 피클

 

급하다 급해. 일단 고기의 존함부터.

윌리엄스버그에 있는, 정육점을 개조한 바베큐집 펫 싸우. 일주일 전에 이미 다녀갔다간 포크를 떨어뜨릴 뻔 했던 마주한 다른 동생의 얼굴이 떠올라, 그날 아침부터 "죽기 전에 이건 먹어야 해"같은 진부한 추천평 따위를 반복했다. 핫한 오라버니가 썰어주는 각 부위들의 레이아웃이 너무도 투박하여 늘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 어떡해 나 지금 죽을 것 같이 행복해.

 

 

 

 

 

다시 원스 공연장. 우리의 자리는 오른쪽 박스석. 좌석표엔 두자리로 나와있지만 실제로는 측면마다 4자리씩 양쪽 도합 8자리였다. 뮤지컬 원스는 2012년도 토니어워즈에서 올해의 작품상 뿐 아니라 [무대조명상]도 수상했는데 스탠딩석에서 보게 되면, 아일랜드 바에 달린 수십여개의 거울들이 은은한 조명에 반딱거리는게 어찌나 이쁜지 모른다. 아무래도 예상했던 것 만큼, 박스석은 일부 시야 제한이 있었는데,

 

 

 

 

 

그래도 이렇게나 생생하게 전해지는 것이었다. 공연 시작 15분전이었는데, 신체에 악기를 소지하고 있는 자들을 빼고 무대 위에 있는 사람의 대부분을 모두 관객으로 보면 된다. 공연 시작 전과 인터미션 때 무대 위에서 맥주를 팔아서 사람들이 북적북적. 공연이 10분쯤 남으면, 동선을 신경 쓰지 않고 배우들이 리허설을 시작한다.

 

 

 

아이리쉬를 리스닝 하는건 여전히 쉽지 않았지만 once와 친구와 함께 하는 다시 오지 않을 밤은 정말 최고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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