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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모든 비유가 무력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가령 너무 많이 사랑하는 것에 대해 고백을 해야 할 때. 첫사랑에게 보냈던 연애편지처럼, 이 고백 또한 한없이 순진하고 단순해질 것이라는 예감이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매일 밤 머리맡에서 별의 그것처럼 무기력이 폭발했다. 파편들을 이불처럼 덮고 내내 진득하고 깊은 잠을 잤다. '애들이 뭘 안다고 글을 쓰겠어?' 무심한 사람들의 말이 자주 꿈속까지 따라왔다.


이불을 걷어차고 배낭을 멨다. 낯선 곳을 홀로 헤매다 하나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날의 사랑은 그날에만 있다.' 미루어둔 감정은 영영 가라앉아버리거나 전혀 다른 모양으로 일그러져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상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을 괴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매일 열심히 사랑해야 하는 것이었다. 매일 열심히 써야 하는 것이었다.


돌아와선 '그날의 문장은 그날에만 쓸 수 있다'고 바꿔 쓰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무심한 사람들의 말이 맞았다. 나는 어리고 나는 뭘 모른다. 하지만 사랑을 말하고 글을 쓰는 과정 속에서만 한 가지씩 비밀을 알게 된다. 좋은 문장을 쓴 날보다 비밀을 새로 알게 된 날 밤에 더 단정하고 아름다운 꿈을 꿨다.


멋모르는 소설을 뽑아주신 건 문장 사이사이에 숨겨둔 그런 마음을 알아봐주셨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겁 없이 사랑하고 쓰겠다고 다짐한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막내를 단 한 번도 의심스럽게 바라보지 않으셨던 엄마, 아버지, 오빠, 글쓰기의 방식이 아니라 눈과 마음의 사용법을 알려주셨던 선생님들께 앞으로 수없이 더 전해야 할 감사를 드린다. 늘 유쾌한 JJ, 성장의 일기를 함께 나누었던 고양예고, 명지대 친구들, 나의 친자매 수현, 진선, 아정, 내게 한 세계를 열어 보여주었던 그와 끼니를 챙겨먹듯 마주 앉아 글을 써온 람에게도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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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를 쓴 정지향 작가의 수상소감문이다. 

책의 144-145p에 수록되어 있다. 

소설도 인상적이었는데, 수상소감은 한 번 본 후로도 자꾸만 그 맛이 땡겨서 다시 펴서 한 번씩 더 읽어본다. 

정말인지, 예쁘고 멋지다.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

저자
정지향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07-0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나는 괜찮아. 충분히 사랑받았거든." 차분하고 조밀한 언어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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