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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 쓸개도 내어줄 수 있는 사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렇게 체감하는 것이 나만의 일방적인 느낌일 것 같지도 않지만) 호적상 87이었다가 어느날 이런저런 사정으로 오늘부터 88이 되었다고 했지만 우리들은 그냥 계속해서 '언니'라고 부르기로 한 K언니가 꼭 일주일 전에 결혼을 했다. 

미술을 좋아하고, 좋아하다가 싫어하고, 꽃을 좋아하게 되었다면서, 또 어느 날엔부터는 꽃으로 업은 못 해먹겠다고 하는 언니의 '웨딩촬영장'에 딱 그냥 편안한 사복 입고 공원 놀러간 애 처럼 입고 가서는 웨딩슈즈와 소품을 들고 다니다 함께 사진이 찍히기도 했고, 그 전에는 커플이 그 날 입을 커플 옷을 사러 백화점을 돌기도 했고, 식 이틀 전에는 축의금을 대신하여 이름도, 인원도 늘 미정이지만 언제 시작된 건지 유래만 기억나는 '남김없이 혼수 사주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역시 백화점에 가서 전자제품을 보고, 인웨어 의류를 몸에 대주어 보고, 뭐 그런 일들을 했다. 손에 청첩장을 쥐어주던 날로 돌아가면, 우리는 볼링을 쳤는데 예비신부인 K언니가 1등을 했고, 누가 계산했는지 잘 기억도 안 나는데 자정 가까이까지 조개를 구워 먹었다.

이 일련의 일들은, 나와 결혼이 (객+주관적으로) 먼 얘기이기 때문에 또는 정말로 나의 일인 것은 아니기에, 한 여자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그 날을 향해 힘껏 달려가는 모습을 합법적인 관찰자가 되어 지켜보면 딱 좋은 일이기에... 그래서 내게는 신부에게 이입할 감정이란게 없었고, 유달리 기분이 신나거나 시무룩할 것도 없이 옆에서 순간순간 함께 임하게 되었다. 신부입장을 10분 남겨두고 신부대기실에서 가서 사진을 찰칵 찍을 때도, 아무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느새 식은 절반이 넘게 진행되어 있었고, 화창한 주말에 이렇게 어떤 행사가 곧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오늘은 얼른 집에 가서 낮잠을 퍼질러 자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는데, 우리들의 친구인 E가 축가를 부를 차례가 되었다. 얘가 두 번째 소절인가를 부를 때부터,


나는 울었다. E가 곡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서부터는 조금 더 본격적으로 울었다. -_- 아 도대체 내가 왜 이러죠 아저씨? 우는 손님이 처음인가요? 그날 집으로 돌아와서는 어떤 사건사고 뉴스에 실린 유서 몇 줄을 읽다가 다시 울었고, 미생 재방을 보면서는 잘 참았지 그랬는데, 그 다음날이 밝았을 땐 임경선의 소설 <기억해줘>를 통틀어 딱 하나만 메모장에 적어놓았던 구절을 우연히 보고는 이루 말 할 데 없이 먹먹해져서 눈물을 또 흘리고는 삭제 버튼을 눌러 메모를 날려버렸다. 아니 이럴 것 까지는 정말 없긴 하였으나...


아마도 잘 울 줄 모르기로 소문난 내가 연달아 운 이유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대략 이러하다. 

지난 주 즈음 나의 '젊젊음'이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타 아님)

보다 더 생생한 젊음으로 가기 위하여, "그 땐 내가 많이 어렸지"라는 말과 함께 회고되지 않을 도리가 없는 나의 더 젊었던 젊음이 나를 떠나주었다. (그래서 젊젊음...이라고 구구젊젊 쓰고 있는데요..

사실 두 시기에는 아주아주 미묘한 차이가 있을 뿐인데. 그게 뭔지 여기서 밝힐 필요는 없는 것 같고.


올 11월에 지인들의 결혼식이 참 많은데, 지난 주의 결혼식이 좀 특별했던 건,

달랑 축하하는 표정만 건네는 데 그치지 않고 

한 사람이 다른 차원의 세계로 넘어가는 일에 대해 축하해 줄 수 있는 전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결혼을 포함한] 삶의 여러가지 이벤트들은 내가 걱정하거나, 성숙하거나, 둘 중 어느 것을 하지 않더라도

내게 주어진 시간을 가장 자연스럽게 살다보면 도달하게 되는 것이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건 그렇고, 나는 오늘 또 다른 친구의 결혼식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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