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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엔 네 편의 연극을 봤다. 다른 분야와는 달리 생애 본 연극이 아직 열 편도 안 되는 내게 11월의 행보는 그래서 의미가 있었는지도. 사실 이달의 키워드는 연극 뿐 아니라 라오스, 결 목자 훈련 스텝 원 등 몇가지가 더 있지만 우선 연극부터 적자.



11월 26일
취미의 방
아트원씨어터 2관 2층 2열


나같은 사람에게는 참 솔깃한 제목이다. 독립성이 확보 된 '방'이라는 공간을 누구보다 좋아하는데 또 그 곳이 '취미'에 대한 것이라니... 헤드 카피가 따로 필요없고 제목만으로 구미가 당겨서 티켓팅 하고 싶지만 초대권으로 다녀 온 것이 반전. 일본 태생 작품이 가진 특유의 키치함으로 또 그것을 반영해 조밀조밀하게 빈틈없이 취미의 아이템들로 무대 공간들이 채워져 있음에도 그것을 바라보다보면 어딘가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끝내 지울 수가 없다. 장르도 미스터리 코미디인데 관객을 웃기려는건지 섬뜩하게 하려는건지 어디에 조금 더 힘을 주었는지 알아낼 수가 없다. 미스터리라는 장르적 속성 때문에 다섯 인물이 끊임없이 알리바이를 풀어내는데 집중력이 저하되는 순간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서사가 액자식 구성인데 가만보니 액자가 두 개다. (응?) 액자를 두 개나 끼운 건 맛있어보이는 그림의 떡 그림에 대한 극본가의 오류다. 그리고 취미를 향해 정직하고 순수하고 흠 없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 있어도 없어도 되는 존재라면 차라리 없는 편이 나은 취급을 받는 장면이 있는데, 그나마 이 부분이 난 가장 섬뜩했다. 살인미수 알리바이라는 건 그들의 사정이고 한 개인의 태도가 부정당하는 것이 좀 슬펐다. 한편 많은 취미 소지자 중 건담 덕후를 맡은 배우가 가장 웃겼다는 데는 아무도 이견이 없을 듯.



11월 20일
사회의 기둥들
LG아트센터 1층 4열


첫공 후기만 보아도 알 수 있었던 이 공연에서는 왠만하면 앉지 말아야 할 자리인 오른쪽 블럭 4열에 앉아서 관람. 1막에서 4막으로 갈수록 무대가 점점 기울어지게 연출된다. 4막에 내 자리에선 배우들의 발이 안 보일 정도다. 그러나 오히려 난 극 중에 이런 조건에 처하는 것이 무대에 몰입하는데 더 이롭다고 생각했고,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다. 기울어졌다는 것이 더 이상 문학적인 상징의 문제가 아니라 여기있는 모두의 삶의 문제라는 게 저릿저릿했다. 언론 프레스콜 이후 기사들을 보면 이 극은 세월호에 빗대어져 소개되고 있다. 무대장치 설정 상 재미있는 부분이 많았다. 극 중에 이동하는 인물들이 서 있는 토대가 기울어져 어쩔 수 없이 오르막을 뛰어 오르는 움직임, 그리고 경사각 덕에 반대편 벽에 더 뚜렷이 비치는 정직하지 못한 인물들의 그림자 같은 걸 놓치지 않고 봐서 난 행운이었다.

와아아 이건 무대설치영상



11월 7일
날아다니는 돌
국립극장 백성희장민호극장 1층 5열

이 떡이 저 떡보다 커보이더라도 이 떡과 저 떡은 본질적으로 같다. 그런데 슬프거나 아쉬워 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나, 하는 깨달음이 일순간에 확 느껴지는 작품. 물흐르듯 몰입해서 보고 난 후에야 알게 된 러닝타임은 105분. 이 작품은 물론 떡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남의 떡에 민감한 현대인이다보니 보는동안 이런 비유가 떠오른 듯 하다 •_• 무대활용은 보는 내내 감탄스러웠고, 배우들의 연기(특히 딕션!)는 시원하고, 정확하다.



11월 4일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1층 9열


연극을 이렇게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가 김수영 시인의 것인지, 강신일 배우의 것인지, 아님 연출가님의 것인지 180분간 알아채려다 끝내 실패. 김수영 시인의 매력을 못 살린 극. 나는 작품 속의 ㄱ의 이야기를 보는 일을 통해서 "아 이게 결국은 나의 이야기고 우리의 이야기구나!"라고 자연스레 깨닫는 방식을 좀 더 선호하는 것 같다. 또한 극 중에 언급된 김수영 시인의 아내 분 김현경님의 <김수영의 연인>을 올해 1월에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김수영은 확실히 이 극에서보단 그 책에서 더 매력있는 사람으로 다가왔다.

책에 수록 되있던 김수영 시인의 일과표. 는 또 이렇게나 귀여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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