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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든 한 편의 영화같은 삶을 살기를 꿈꾸지만 그렇게 사는 대신에 오늘은 무슨 영화를 볼까 하고 고민한다. 그러나 영화같다 라는 말보단 소설 쓰고 있네 라는 말이 어쩐지 더 듣기 좋았던 나는 작년까지만 해도 영화관에 가는 빈도가 계절에 겨우 한두 번 정도 되는 정도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중복 관람까지 합하면 올 해 갑자기 40회 정도로 관람 횟수를 끌어올리게 되었는데(여기다가 집에서 TV로 또는 노트북으로 본 영화는 25편정도) 내 멋대로 어워즈 시즌이 되어 생각해보니 정말 이 같은 결과에 기여하게 된 요인들이 여러가지인 것이다.


우선은, 나의 경제력. 올 봄부터 고정적인 수입이 생겼다 여름이 되니 말게 된 나에게는 벌어놓은 문화비라는게 생겼는데, 한창 여름일 적의 나는 이걸로 공연을 봐야겠다는 생각밖엔 없었다. 그래서 뮤지컬 VIP석을, 또는 이십만원 상당의 뮤직 페스티벌 2일권을 삼개월 할부로 턱턱 지르고 그러는 와중에도 내가 벌어서 내가 티켓팅을 하는데에서 오는 흥이 미처 다 풀리질 않으므로 안 하던 영화 표를 끊기 시작했다. 정말로 시작은 그랬다. 돈이 있어서 영화 표를 샀다. 시간이 흐르고 최근에는 돈이 없어서 영화 표만 산다.


번째 이유는, 당첨률이 좋았던 시사회. <꼬마 니콜라의 여름 방학>, <선샤인 온 리스>, <컬러풀 웨딩즈>, <앵그리스트맨>, <왓 이프>, <꾸뻬씨의 행복여행>, <슈퍼 처방전>,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버진 스노우>, <타임 패러독스>. 이것이 뭐냐하면. 8월부터 시사회에 총 열 번이나 초대 받은 내역이다. 이건 첫번째 이유와 당연히 연동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왜 또 나인지, 어떻게해서 내가 당첨이 되는 것인지를 나는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말할 수 없고 다만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얼리어답터 놀이를 할 수 있어서 꽤 중독성이 크다. 해당 작품의 국내 개봉일로부터 짧게는 이틀, 길게는 한달 전에 열리는 시사회는 "볼까 말까 고민되는데 그 영화 어때?"에 대한 지인들의 질문에 최초로 답변할 수 있는 영예의 기회를 안겨준다. 내가 좋은 별점을 매긴 영화가 과연 흥행작이 되는지 안 되는지 지켜보는 일도 묘하게 재미있다.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텐데, 시사회로는 아니었지만 11월 마지막쨋 주에 씨네큐브 예술영화 프리미엄 페스티벌에서 미리 상영 된 <마미>를 보았다. 이 영화의 국내 개봉일은 1218일이었는데, 그 전에 SNS상에서 배급사가 몰아쳐대는 마케팅이 너무하다고 느껴져서 친구와는 이런 얘기를 나눴을 정도였다. 이건 뭐


"마미라는 유럽의 어느 소도시를 가려고 하는데 여행을 블로그로 배우고 있는 느낌"


내가 마미를 개봉전에 미리 보지 않았더라면 (-_ -) 자비에 돌란 감독의 천재성과 예술성이 어쩌고, 화면 비율이 인스타그램 사이즈에서 반전으로 확장되고 어쩌고, 오아시스랑 셀린 디온 노래가 영화에 부드럽게 깔릴 때 어쩌고 저쩌고에 이미 쩔어서 정작 그 영화를 보게 될 땐 아무런 감흥이 없었을 것이라 확신이 드는 것이었다.


세번째로는, 본편 후 해설의 재미. 영화를 다 보고난 후 평론가나 영화감독에 의한 설명을 접하는 GV, 그리고 영화를 소재로 하는 라디오 코너를 듣는 일들은 해당 영화에 대한 내 인상과는 별개로 큰 유희였다. GV는 <족구왕>, <메밀꽃, 운수좋은날 그리고 봄봄>, <자유의 언덕>, <보이후드>까지 총 4번을 갔는데, 이 중 <보이후드>는 러닝타임만 2시간 45분에다가 이동진 평론가의 해설이 한시간 반이 훌쩍 넘어가서 영화관에서 거의 고대 유물의 자세를 취하며 네시간 반만에 일어났더랬다. 라디오는 SBS 이동진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화요일 코너인 [김혜리의 주간영화]를 빼놓지 않고 들었다. 그 주에 집계된 박스오피스 상위 순위 다섯편과 다양성 영화 두편을 간단히 언급하고, 그 주의 주요 영화를 한 두편 선정해 전/현직 씨네 21 평론가끼리 만담을 나누는 것이다. 나는 한 편의 영화가 이렇게나 할 말을 많이 만들어내는 존재가 될 수 있는 줄은 몰랐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총체적으로 영화라는 장르에 대한 호감이 상승했다.


마지막은, 영화 큐레이팅용 앱 '왓챠'. 거의 칠 할은 왓챠 덕이다. 이 앱은 정말로 재미있고 나 따위의 관객에게 여러모로 최적화되어 있다. 나는 엔딩크레딧을 끝까지 차분히 지켜보는 유형은 아니므로, 영화가 끝나면 스마트폰의 조도를 최대한 낮춘 채로 왓챠를 켜서 별점과 한줄평을 입력한다. 지금까지는 여든 개 정도의 한줄평을 입력했는데 얼른 백개가 돌파하길. 그럴거다.


이러저러한 요인들로 한 해 동안 60편 내외를 본 것 같은데, 

이 중 2014년도의 영화관 상영작 기준으로 올 해의 영화 Best10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1. 더블달콤한 악몽 (The Double, 2013)


제시 아이젠버그의 신들린 12역 연기

줄을 두텁게 튀기는 현악기 위주의 사운드트랙

관객이 지치지 않게끔 100분이 안 되는 러닝타임

엔딩크레딧에 너무 멋지게 흐르는 신중현의 햇님.

 

2. 그녀 (Her, 2013)


내가 운영체제의 여친이 될 수 있을까 보다는 

내가 운영체제를 남친으로 둔 친구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가 더 궁금해졌던 작품.


3. 족구왕 (2013)


일단 웃기고 

아무리봐도 진정 됐다 싶으면 웃기고

청춘에 관한 뭔가 좀 유익한 메세지를 얻으려고 해도 머릿 속이 텅 비면서 웃기다.

 

4. 가장 따뜻한 색블루 (Blue is The Warmest Color, 2013)


엉클어진 머리를 묶었다 풀었다를 반복하는 아델과 

언제나 고개를 45도쯤 기울이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엠마는 

영화 속의 어떤 장면들보다 인상적이다.

 

5. 겨울왕국 (Frozen, 2013)


꿈결에 들은 것까지 치면 못 해도 이천 열 네 번은 들었을 렛잇고.

 

6.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2014)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망부석은 모름지기 적극적이어야 한다같았다랄까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닿을 수 없이 큰 스케일의 휴먼 드라마.

 

7. 굿모닝 맨하탄 (English Vinglish, 2012)


개인에게 자아를 실현하는 것보다 

더 존엄한 것이 뭔지 보여주는 역설적인 영화였다

역시 웰메이드 인디아 무비!

 

8. 어거스트가족의 초상 (August: Osage County, 2013)


화해 하지 않기로 주체적으로 선택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을 지켜보는 

불청객 역할놀이를 한 기분.

 

9.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X-Men: Days of Future Past, 2014)


이만한 걸 달 자신이 없고서야 감독들은

영화에 부제를 달지 말도록 하는 편이 좋을 것

"days of FUTURE PAST"

 

10.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桐島部活やめるってよ, 2013)


다시점 구성이 매력적인데 

시점을 달리한다하여 큰 반전이 있지 않았던 게 더 좋았다

키리시마는 자리를 비우길 잘 했어


+ (14.12.31. 업데이트)


올해가 가기전에 고무적이었던 부분들이 또 생각나서 몇 자 기록한다.


a. 생애 두번째로 영화관에서 내 돈 주고 스릴러물을 관람했다. 첫번째는 몇 년 전의 <마더>였는데 동행인이 원빈을 너무도 보고 싶어한 탓에, 나는 비자발적으로 예매창에서 결제 버튼을 눌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두번째 영화는 <나를 찾아줘>인데, 1분도 안 지루하다는 평을 보고나니 얼마나 스무스한 영화일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영화를 당시의 소개팅남과 보았는데 함께 보기 좋은 영화였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것이다.


b. 8월에 본 <프란시스 하>에는 "undatable"이라는 대사가 있었다. 너는 이런 녀석이야. 하고 친한 친구들에게 말할 때 써먹기 좋은 형용사 하나를 찾은 셈이었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난 이후로 한달여동안 언데이터블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저주의 언어가 아닌 축복의 언어로 쓰이기도 했다. #축하한다 #남자랑나의사랑나의신부보니까좋냐


c. 미적으로 인상적인 포스터들이 몇 개 있었다. <무드 인디고>의 아트포스터들과 <인터스텔라>,<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프랭크>는 반사적으로 나를 영화관으로 달려가게 했고, 감독이 극찬한 <마미>의 한국버전 포스터도 아름다웠다. <거인>이라는 영화는 좀 겁나서 못 보고 있는데 포스터가 한 인물의 도약과 추락을 동시에 보여주는 레이아웃을 가지고 있는데 또한 손에 꼽힌다.


d. 올 해의 맘마미아! 라는 호기로운 헤드카피를 가진 뮤지컬 영화<선샤인 온 리스>, 그리고 줄리엣 비노쉬의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는 올 해 가장 보고 있기 힘들었던 영화 두 편이었다. 그래도 후자는 40대가 되면 다시 꺼내 볼 것이다. 이김에 장기적인 플랜 짜기 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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