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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4 글

응원

쥐씨 2015. 1. 9. 01:55

누구나 정도는 다를지라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을까를 두고 고민 한다. 다 잘 될거라는 식의 값싼 낙관주의가 필요한 사람은 아주 일부분일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가 구축해놓은 꿈과 이상을 바라보며 나아간다. 그런데 이건 개인이 어떤 굴레 속에서 살고있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각종 상황에서 각종 이유들로 실패자가 되었던 경험을 이겨내기 위해 마음의 근육이나 주체적인 의지를 기르라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폭력일 수 있다.


나는 그런 사람 중 한 명인 그 친구에게 "니 맘 다 알아", "나도 비슷하게 그랬던 적이 있는데", "너무 극단적인 생각만 안 하면 괜찮지 않을까?" 같은 말들을 할 수 없고 안타까움이나 슬픔, 처절한 심리를 드러내놓을 수도 없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갈수록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내가 너를 응원하고 있다는 말 조차, 나는 너와 달리 다른 사람을 응원해 줄 에너지라는 게 있는 사람이야, 라고 들릴까봐 주저하게 된다. 하지만 너를 계속해서 응원하고 있으며 하루이틀간의 조급함이 아니라 길고 끈질기게 너의 더 나은 날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말을 꼭 해줘야만 했다.


그 친구가 자신의 세계에 대해서 구구절절 털어놓았던 가장 첫 날, 나는 우습게도 호기심 같은 걸 느꼈다. 나와는 조금도 같은 부분이 없는 성장과정을 거쳐, 역시 공감대를 찾을만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20대의 시간을 보내고서,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 순간에 그 친구가 도착해 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처럼 보였다. 타인의 슬픈 사연 가운데서 호기심을 품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세상에 태어났구나' 하는 의식이 있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 친구가 치열하게 삶이라는 놈과 싸우고 있다는 것이, 같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자리에서는 전혀 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자기자신을 완전히 쓰러 넘어뜨릴 수 있는 그 아이의 감정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는 주기적인 만남 속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멀쩡한데다, 예쁘고, 배우고 싶은 부분도 많았던 그 친구는 혼자가 되기만 하면 시작이 언제였는지도 모르고 끝없이 무너졌다고 한다. 몇 번 더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나서는 그 친구가 내 앞에서는 괜찮은 척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그 친구가 정말로 "나는 하나도 괜찮지가 않다"를 여과 없이 드러내보일 때면 나는 몇분도 못가 피로함을 느껴서 조심스레 뒷걸음질친 적도 있었다. 가끔은 아무리 떨어져도 바닥에 닿지 않는 아찔한 삶의 절벽 끝을 딛은 채로 내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나는 한번도 그렇게 가파른 구조를 본 적이 없는데 점점 그 친구와의 대화는 위에서 절벽 그 아래를 함께 오랫동안 내다보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현기증이 나서 이제 그만 돌아서서 평평한 땅을 향해 걷자고 했다. 너의 집에서 나와서 서울의 다른 곳들을 걸어다니거나, 영화를 한 편 보거나, 달달한 걸 먹거나, 그렇게 시간을 보내보자고 했지만 그 친구는 그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고 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럼 거기서 발을 헛디디지만 마"였다.


그 친구가 우울증을 진단받았다고 했다. 이후 그 친구는 이 약을 복용하면 기분이 어떻고, 선생님과의 상담에는 이런 소재로 이야기를 하고 왔고, 오늘은 4주만에 아무 일 없이 평온한 날을 보내고 있고, 하는 이야기를 내킬 때마다 내게 들려주었다. 우리는 그동안 많은 대화를 했는데 이천십오년이 되어서는 그 친구가 원하므로 더 이상의 연락은 없을 것이다. 너는 내일도 오늘과 조금도 다름 없이 눈을 뜨면 자신의 굴레 안에서 살아갈 것 같다. 너의 굴레와 네 1:1로 줄다리기를 하는 상황은 불리하다. 그렇다고해서 나의 다른 손이 너와 함께 줄을 잡아당기는 일이 도움이 될까. 팔을 걷어붙히는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맞는걸까. 기다릴 것이다. 너가 지금은 모르는 것들을 알게 될 때까지. 삶의 다른 세계와 가능성, 그래볼만한 것, 이전과는 다른 것이 너에게도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난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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