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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적절한가

쥐씨 2015. 5. 10. 11:50


월-금까지의 회사 공동체와 주일 및 토요일 및 등등의 교회 공동체에서 이젠 어딜가도 그 그룹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나는 말의 무게와 행동의 책임감을 절감하며 지내고 있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게 목표는 아니다. "언니는/누나는/너는 좋은 사람이야"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건 덤으로 주어지는 것일 뿐. 애초부터 나는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기보단 적절한 사람이고 싶다.

그들이 나를 만나면서 지금은 물음표가 많이 찍혀있을지라도 언젠가 돌이켜보면 그 만남이 무시할 수 없는 시간들이었구나, 하고 느낄 수 있게 된다면? 이것이 바로 내가 정의내린 적절성이다.

지난 주에는 나와 어떤 사람이 서로 적절한 사이가 아니고, 앞으로도 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한 지점이 있었다. 상대의 진로를 놓고 고민을 하는데 꽤 오래 여러번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내가 정말 던지고 싶은 한마디는 이것이었다.
"니가 알아서 결정해. 뭘 하고 살든 죽지는 않아.
그리고 니가 뭘 하며 살아가든 난 별로 관심이 없을 것 같다."
그는 내가 그러했듯 '뭐 해먹고 살까'가 삶의 가장 큰 화두일 때 만나는 사람들에게 뭐라 도움이 되는 말을 듣고 싶은 그런 시기를 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진짜 자신의 플랜에 나의 의견을 반영하든, 하지 않든, 말을 잘 해줘야 한다. 하지만 내가 정말 건네고 싶은 말은 '너가 뭐 해먹고 사는게 좋을까'보다 '너는 도대체 사람들한테 왜 이러는걸까'에 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사례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절성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정의한다면, 도대체 너는 왜 이모양에 대해 함께 고민해나갈 수 있다면 우리는 적절한 사이인 것이다. 당장 그가 달라진 모습의 사람으로 나타날 수 없다 하더라도, 내가 지금 진짜 그를 위해 주변사람으로서 해야하는 바를 한다면. 진로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를 다루기 시작한다면. 그가 다듬어지는데에 얼마나 시간이 많이 소요되든 그건 사실 상관 없는 일이다.

최근 일주일간 결 사람들을 세 번 만나면서 나는 동상이몽이 아니라 이상동몽의 -_-; 현장에 있었다. 생각이 다르고, 표현이 달랐지만, 내가 그들에게 과연 적절한 사람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던 것 같다. 나보다 더 적절한 사람이 있다면 그쪽으로 가는 게 시간을 덜 낭비하는 일일지도 모르니. 그렇지만, 같은 방향으로 달하는 같은 꿈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만날거다.

이렇게, 오늘도 그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결론= 너무 비장하게 읽히면 그냥 한 번 웃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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