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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

사랑에 관한 쓰기

쥐씨 2015. 8. 25. 13:40

니콜 크라우스 <사랑의 역사> 발췌 7문장


1. 묘사할 수 없는 세계에 산다는 건 너무 외로웠다. (16p)

2. 이파리 하나를 그리기 위해 모든 풍경을 포기해야 한다. (67p)

3. 엄마는 작가에게 사후 노벨상을 주는 버릇이 있었다.(70p)

4. 내가 울었을 수도 있다. 그래봤자 달라질 것도 없지. (114p)

5. 그 순간은 이미 지나갔고, 우리가 살 수도 있었을 삶과 우리가 살아온 삶 사이의 문이 우리 면전에서, 아니, 내 면전에서 쾅 닫혀버렸다. (123p)

6. 지금까지도 모든 감정들이 전부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 (152p)

7. 그리고 그 때 감정의 역사에서 수백만 번 째로, 그의 가슴이 요동쳤고, 그 충격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1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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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설과 성악설 중 어느 쪽을 더 믿고 가야 하는 것인가 싶을 때마다, 차라리 이 문제가 과학에 기댈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누구나 악덕한 알바 사장님을 만나 푼 돈을 쥔 채 무릎이 꺾이는 시간을 지나치면, 티 없이 맑은 존재와 우연한 만남을 이루기도 한다. 우리들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들은 정말로 악한가. 묘사할 수 없는 세계에 산다는 건 너무 외로운 일이다.


<월e>의 로봇 월e는 이름 모를 행성에서 제 가슴의 빈 부분에 쓰레기를 모아 넣은 후, 단단하고 각진 육면체의 더미를 뱉어내며 살아가고 있다. 퇴근 후 자신만의 던전으로 돌아와 조명을 키우고, 음악을 듣기도 하지만, 그것은 또 다시 내일의 더미를 뱉어내기 전까지의 행위일 뿐, 그렇게 성실하고 규칙적인 시간 속에 월e의 기분과 느낌, 그리고 감정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다 지구에서 온 또 다른 로봇인 이바가 월e 앞에 나타난다. 월e의 이바를 향한 집중력은 이파리 하나를 그리기 위해 모든 풍경을 포기하는 일과도 같다. 지금까지 월e가 딛고 살아왔던 곳은 360도 어디로 가든 자신을 끊임없이 일하게 하는 쓰레기가 쌓여있는 곳이었다면, 이제 활동반경은 이바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별다른 대화는 없다. 서로의 이름만 가끔 부를 뿐이다. 함께하는 낮과 밤이 흐른다.


그러다 새싹을 먹은 이후로 이바의 최초의 침묵이 시작된다. 침묵을 마주한 월e는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 전까지도 월e에게 모든 감정들이 전부 존재했었다고 할 수는 없다. 이바 같은 존재를 처음 만났고, 그 존재가 일순간 묵묵부답인 것을 보는 것도 월e에게는 처음이다. 일종의 경험치 부족이다. 하지만 그 때 결코 길지 않은 감정의 역사 중 수백만 번 째로, 그의 가슴이 요동쳤고, 그는 그 충격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월e가 관객들 몰래 울었을 수도 있다. 그래봤자 달라질 것도 없지만.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는 로봇이 침묵을 스스로 선택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단절을 모르던 순간은 이미 지나갔고, 그들이 살 수도 있었을 삶과 그들이 살아온 삶 사이의 문이 그들의 면전에서, 아니, 월e의 면전에서 쾅 닫혀버렸다. 그러나, 한 존재와 다른 존재 사이의 단절은 둘 중 누가 선택하고, 기여하고, 의도한 문제이든간에 둘 사이에 사랑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게 사랑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사랑 앞에서 이들은 착하지도, 비겁하지도 않다. 그랬던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주어지고, 생겨나는 것들 사이에서 다른 어떤 것도 탓하지 않으면서 마침내 서로가 되어가는 태도. 그것이 월e와 이바가 제안하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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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18.

한 여름 밤의 북클럽 과제

<사랑의 역사>에서 7문장 발췌 후 그 문장을 포함한 '영화 속 사랑'에 대해 쓰기

(나는 6문장만 넣었다.)

non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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