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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뻔하지만 종종 믿기 힘든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하나님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일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평범하다. 성경은 딱 우리만큼 평범한 사람들이 콩처럼 뿌려져 있는 밭과도 같다. 일단 등장인물이 해도해도 너무 많다. 나는 성경 읽기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대신, 자서전을 읽기에 대하여 말할 것이다. 한 사람의 이야기에 시간을 들여 집중하는 일이 당신을 어떻게 움직이게 하는지에 대하여.


올리버 색스, 온 더 무브

 자서전은 그 사람을 설명하는 문장의 마침표일까, 아니면 첫 번째로 등장하는 단어일까? 온 더 무브는 후자와 같다. 당신이 올리버 색스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 봤다면, 국내에 번역 된 열 권이 훌쩍 넘는 그의 저서들을 제쳐두고 이 책부터 읽기를 권한다.

 올리버 색스는 신경과 전문의로서 생을 살았다. 열 살부터 탈륨, 납 같은 원소들과 친구 삼아 지냈으며 화학, 물리학을 비롯한 모든 과학을 사랑하며 자랐다. 매 주 월요일 출근(물론 의사 가운을 꺼내 입는 병원으로의 출근) 직전까지 모터사이클을 타고 내달리는 것을 즐겼으며, 숨도 못 쉴 정도로 무거운 역기를 들어올리는 것도 일상의 소일거리 중 하나였다. 이모들 중에서는 레니 이모를 특히 좋아했지만, 그녀 뿐 아니라 자신이 만나고 이야기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좋아했다. 올리버 색스의 일은 신경질환이라는 것이 왜 상대방의 생에 끈질기게 붙어 있는지 알기 위해 환자들과 대화 하는 것이었고, 그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를 적어 책으로 엮으려는 욕구에 시달리며 오랫동안 원고를 완성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온 더 무브를 보면 그의 직업만족도가 얼마나 높았는지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열 두 챕터로 구성 된 이 책은 다행히 그렇게까지 전문적이지는 않다. 물론, 수 많은 병명과 주요증상들이 등장하지만 신경의학 개론서가 아닌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이므로 별 문제 없이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끝에서 두 번째 챕터인 ‘뇌와 의식의 재발견’에서는 잠시 이 책의 장르가 흔들리기도 하는데, 갑자기 전문적인 의학지식들이 쉴 틈 없이 쏟아진다. 하지만 이 대목만 어떻게든 넘어서고 나면 맑고 아름다운 동화책 같은 마지막 챕터 ‘집’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책의 중간중간에 수록되어 있는 흑백 사진집에서는 반가운 얼굴도 만날 수 있다. 335쪽의 ‘1989년 로빈 윌리엄스와 영화 <사랑의 기적> 촬영장에서’라고 소개 되어 있는 투샷 사진은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이 자서전이 이제 채 1/3밖에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유쾌한 반환점이다.

 “요즘 젊은이들은”과 “나 때만 해도”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서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는 어른을 찾아보기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대이다. 온 더 무브에서는 꼰대미라고는 없는 여유 넘치는 말들을 들려주는 어른을, 또한 다정하고 따뜻하게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의사선생님을 만나볼 수 있다.


로맹 가리, 내 삶의 의미

 또 다른 책은 매우 간결하고 쉬운 세 단어의 조합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제목을 가진 작가 로맹 가리 자서전 내 삶의 의미이다. 이 책은 그의 생전 회고록을 녹취한 형태여서, 그와 정면으로 마주보고 이야기를 듣는 듯한 구어체로 쓰여져 있다.

 먼저 소개한 온 더 무브는 500여쪽을 웃도는데, 내 삶의 의미는 단지 130쪽일 뿐이다. 얇고 가벼운 책은 독자에게 반가운 존재지만, 어느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담아내기에 130쪽으로는 모자란 감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우가 잠시 들기도 한다.

로맹 가리는 이런저런 가정사로 유년기부터 서로 다른 국가의 문화권을 네 번이나 옮겨 했고, 9살부터 글을 썼다고는 하나 전투기 조종사, 외교관, 영화감독 등 여러 직업군을 거쳤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그가 3개 이상의 필명을 가진 작가라는 사실보다는 덜 놀랍다. 이를테면, 로맹 가리가 자기소개서를 썼다고 할 때, 그의 성장과정과 경력사항보다는 ‘이름’ 란을 더 자세히 쳐다보게 된다고 해야할까?

 그가 본명이 아닌 여러 개의 필명들을 지닌 이유, 그리고 그 필명 중 하나로 프랑스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수상한 소감에 대해서 이 책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는 ‘스펀지처럼 시대의 공기를 빨아들’이는 작가로 사는 동안 “수차례 거울 앞에 서서 생이 나를 짓밟고 지나가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를 상상했다.”고 자기 앞의 생을 통해 말하고 있다. 자기 앞의 생은 그가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출간한 소설이다.

 전자와는 달리, 로맹 가리가 쓴 다른 작품들을 한 두권 읽어 본 후에 자서전인 이 책을 읽는 순서가 더 좋을 것 같다. 생과 삶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지만 결코 해소 되는 지점을 보여주지 않는 그의 소설들을 읽다 보면 그가 붙잡으려는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지기 마련일텐데, 그 때 내 삶의 의미를 읽길 권한다.


 “지극히 일반적이고 사적이며 일상적인 의미의 역사가 나를 이끌었”다는 로맹 가리의 고백은 올리버 색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 될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왜 그들의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가. 바로 우리의 삶도 얼마나 작고 평범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볼 수 있어서 그렇다. 그들의 자서전에서 당신의 이야기 역시 읽힐 수 있다고 믿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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