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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되풀이 될 접속사

-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에 대하여

 

<혼자가 되는 책들>에서 최원호는 누군가에게 음악을 추천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말한다. 생각해보면 그러한 종류의 어려움은 우리가 겪는 여러가지의 어려움들 중 꽤 본질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왜냐하면 나는 남과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상대가 자신만의 해변을 원한다 할지라도 기껏해야 관광지로서의 바다에 데려다 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로가 영영 다른 곳을 여행 할 운명이다. 소설을 좋아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 때 소설을 추천하지 않을 이유는 이것으로 충분히 설명이 되었다. 너는 나보다 이걸 좋아할 수 없을 것 같고, 너는 나만큼 이걸 싫어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러나 <한국의 싫어서>의 초판이 나온 날인 1년 전 어버이날부터 나는 어버이 뿐 아니라 대가족의 구성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의 머릿수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했고, 그 과정에서 부담은 없었다. 물론, 첫 번째로는 별다른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는 제목 <한국이 싫어서> 때문이었고, 그 다음으로는 뭔가가 싫다는 것을 상징할 만한 잔혹한 표지가 아니라 비교적 산뜻한 표지의 그림에서 거두지 못하는 시선들을 보았던 것 같고, 끝으로 얇기까지 하니 '추천 아이템'으로는 이 책만한 것이 없던 것이다.

 

한글로 적힌 '한국이 싫어서'는 이 책을 읽어 내리는 나를 포함한 모든 독자들에게 최적의 접속사 중 하나일 것이다. 단지 떠나고 싶은 이유에만 그치지 않고, 괜히 울적한 이유, 격렬하게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이유, 나 스스로가 싫은 이유 마저도 바로 이 때문이니 말이다. 한국이 싫어서.

 

계나가 말하는 "지금의 생활이 주는 안정감과 예측 가능성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은, 그러니까 어떤 대상에 대해 소중함이 느껴질 때 그것을 취향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모험가적인 기질이 있었어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의지나 노오력 같은 것들을 남보다 적게 가진 사람들만이 스스로를 설명할 때 쓰는 애먼 표현인 것일까?

 

아무렴 계나는 호주로 떠났다. 그러나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소설 <한국이 싫어서>는 우리에게 어떤 현실을 보여주고자 하는가. 주변에는 매일같이 떠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사는, 또는 떠날 것 처럼 굴더니 결국 김 새게 하는, 그도 아니면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수 많은 계나들이 있다. 당신의 계나가 당신을 부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찰지게 신세를 한탄하든지, <한국이 싫어서>를 건내든지. 선택은 읽은 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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