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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 미국의 어느 학교로 어학연수를 갔던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어학으로부터 최선을 다해 멀어졌다. 이국에서 겪는 낯선 경험들을 우리말이 아닌 낯선 언어로 매주 보고하듯 발표하던 수업 ‘스피킹의 기초’ 학점이 충격적으로 낮았기 때문은 아니다. 그 즈음의 나를 가장 적절한 단어들을 써서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일이 더 이상 소박한 일상이 될 수 없음을 알게 된 지점부터 한국어가 아닌 모든 것에 흥미를 잃었을 뿐이었다. 멀고도 가까운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는 영어, 곧 나의 실패한 언어를 오랜만에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실패할 것 같더라도 수단과 방법을 개의치 않고 이어져야만 하는 ‘이야기’에 대해 말한다.

 

레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어느 날 어머니의 집 앞뜰에 있는 살구나무에서 한아름 딴 살구가 배달된다. 몇 년동안 먹어야 될 정도의 양이다.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살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녀가 살았던 동네, 캘리포니아 사람들에게 살구나무를 심고, 기르고, 그 열매를 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져 포털에 ‘미국 살구’를 검색했더니 “저는 미국에 ’살구‘ 있는 영주권자인데요” 같은 결과가 나왔다.

 이 책의 한 축에는 병에 걸린 어머니가, 또 다른 한 축에는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병을 얻게 된 레베카 솔닛이 있다. 모녀 사이의 애정 또는 애증을 증명하려 하기 전에 작가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인 메리 셸리 이야기를 끌어오는데, 판타지 작가로서의 역량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를 만든 메리 셸리가 누군가의 딸이자, 누군가의 엄마였다는 점이다. 그게 어쨌다는 것일까? 자신이 누구인지를 소개하기 위하여 자신만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레베카 솔닛은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자라면서 들은 우화와 만남의 에피소드들을 총동원한다.

 다시 살구로 돌아와 마무리 되는 이 책은 “그 시기의 혼란을 하나의 이야기 비슷한 것으로 만들어내는”(350면) 일의 가치에 대해 말한다. 언젠가 살구는 익다 못해 썩고, 사람은 건강을 잃고 잠시 회복 되었다가 죽게 될 것이다. 단, 이야기만이 사라지지 않는다.

 

줌파 라히리,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영어로 쓴 작품으로 영어권 시장을 휩쓴 작가 줌파 라히리는 피렌체로 여행을 갔다가 이탈리아어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단언한다. 나는 영어를 버려도 될 정도로 이탈리아어를 원한다고. 이 책은 줌파 라히리가 새로운 언어를 20여 년간 공부한 기록을 담은 산문과 이탈리아어로 쓴 두 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수록된 소설뿐 아니라 산문까지도 이탈리아어로 서술되었다는 것을 책을 십여 페이지 남겨놓고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제2외국어 공부기’는 ‘모국어’로 적었을 거라 감쪽같이 믿었던 것이다.

 그녀는 왜 새 언어를 익히고 싶은지 자신의 이탈리아어 선생님에게조차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상태, 그러나 자신의 속에서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아는 것. “이탈리아어는 분명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과 난 떨어져 있었다. 이탈리아어는 내가 관계를 맺어야 하는 언어 같았다”(21면). 도대체 그녀가 어쩌다 이탈리아어로 써내려가는 언어순례를 하게 되었는지, 우리는 그 여정에 설득 당할 수는 없을지라도 응원해줄 수 있다. 실제로 그녀는 무언가를 쓸 때, 영어로는 정제된 언어로 다시 고쳐 쓰는 것이 가능했지만 이탈리아어로는 “단순히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고 말한다. 지름길로 우회하거나, 뒷걸음질 칠 수 없는 그 길은 외롭다. 외로웠을 것이다.

 “피 속에, 뼈 속에, 이 언어는 없다”(41면)는 것을 알면서도 배워야 했던 이탈리아어는 그야말로 ‘멀고도 가까운’ 언어인 것처럼 보인다. 언어적 감이 있는 편인 그녀가 이탈리아어 시제 중 불완료과거를 1년 이상 헷갈려 했다는 대목은 외국어를 배운다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탈리아어가 제 아무리 고유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해도, 문법적 요소가 그 아름다움을 덮어버리는 순간이 종종 벌어질 수 있다.

 영어에 가장 능숙한 작가가 기꺼이 이탈리아어로 작성한 산문과 소설을 또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이 책을 읽는 것은 그렇고 그런 경험은 아닐 것이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모험에 가담하기를 바란다.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내가 지금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게 맞을까 싶어지기도 할 테지만 괜찮다. 다들 그럴 거다.

 

 당신의 살구는 무엇인가? 당신의 이탈리아어를 찾게 된다면 무엇부터 하겠는가? 필요하다면 이런 것들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빌어, 각자의 이야기를 길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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