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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일 뿐 아니라, 떠나기 좋은 휴가 또는 방학의 시절이기도 하다. 의례적으로 너도나도 한 두권의 책을 머리맡에 놓아 두게 되는 독서의 계절 가을을 맞기 전에, 여름 휴가시즌은 책 읽기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떠남'을 소재로 하면서도 서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소설과 산문을 골라보았다.

무라카미 류,  『희망의 나라로 엑소더스』
 사실 현대인들이 훌쩍 떠나고 싶어 하는 곳은 죽기 전에 꼭 봐야하는 세계 명소가 아니라 ‘희망의 나라’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일지 모른다.
『희망의 나라로 엑소더스』는 무언가 결정적인 것을 놓친채로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는 현재의 일본으로부터 빠져나와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상상 속의 유토피아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모습이 담긴 SF소설은 이미 많이 쓰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소설만의 차별점은 무엇일까?
 작품의 주인공은 만사에 피로감을 느끼는 어른이 아니라 무엇이 보통인가를 고민하며 자랐던 중2 학생 나카무라와 집단등교거부를 하는 일본 전역의 중학생들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언뜻 성장소설로 읽히는 지점이 있다. 동시에 소설로 읽는 경제사 같은 인상도 받을 수 있다. 작품의 배경은 2000년대 초반의 일본 경제 불황과 아시아 통화기금위기가 있던 때이고, 그로부터 새로운 화폐경제를 창출하는 새로운 국가 건설에 대해 정부 관료와 경제 주간지 기자의 입을 빌어 설명된다.
 부와 명예라는 낡은 가치가 아닌 희망을 위해 떠나기로 결정하는 데 있어 나카무라를 비롯한 학생들은 중2답게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한다.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어린아이라도 알 수 있게 설명할 수 있다.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요컨대 어른들 자신도 모 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121면) 그러므로 이 대목은 따끔하다. 아는 만큼 보이지만 모르는만큼 떠날 자격은 없는 것 같아서 그렇다.
'집단등교거부' 만큼의 파급력은 아닐지 몰라도 일본 고등학생들의 또 다른 움직임인 ‘야간보행제’를 묘사하는 온다리쿠의 소설  『밤의 피크닉』을 함께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내 방 여행하는 법』
 『내 방 여행하는 법』은 이것저것 재고 따지고 나서야 떠나는  『희망의 나라로 엑소더스』 속 나카무라 일행의 발걸음에 정면으로 맞서는 책이다. 저자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는 제목 그대로 자신의 방을 여행지로 선정하고, 42일간의 여행일지를 작성한다. 다른 여행지를 고려한 흔적을 찾아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의 여행에 있어 자발적인 의사 결정이 이루어진 건 아니다. 메스트르는 어느 장교와 결투를 치른 댓가로 이탈리아의 어느 도시에서 가택연금형을 받아 당분간 집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왕에 받을 벌이라면 달게 받는 것이 좋으니, 여행자의 마음으로 집에서 지내보자는 것!
 벽에 바짝 붙어 걸으면 둘레가 서른 여섯 걸음이 나오는 방에서 의자를 바라보고, 침대를 굽어보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이 여행법은 ‘낯설게 보기’같은 태도를 권장하는 것인가 하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낯설게 보기는 말만 쉽고, 사소하지만 익숙한 것들이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기 때문이다. 그저 어떤 여행법이 있는 것이다. 머나먼 곳으로 떠나지 않아도 되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걸까 싶은 생각부터 드는 정교한 조형물이라든가 지형을 눈에 담지 않아도 되는. 그 분의 창조는 어디에서나 목격될 수 있으므로.
 뭐니뭐니해도 여행에 있어 경비는 특 우선순위 중 하나일텐데, 방을 여행하는 것은 무일푼으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내 방 여행하는 법』에 여행의 묘미인 음식 먹기, 사진 찍기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은 점은 아쉽다. 저자는 벽에 걸린 그림을 관찰하는 일을 여행 루트에 며칠간 포함시키는데, 만약 당신이 방에 액자라든가 삽화가 그려진 달력을 걸어두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여행법은 당신의 스타일과 어긋날 여지가 있다. 물론 당신이 나처럼 룸메이트와 같이 살고 있다면, 이 여행은 애초에 떠나기 힘들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번 주말에도 방콕이나 했다고 자조하기보다는 이 책을 읽는 것이 더 의미있지 않을까? 여기에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나 영화  <룸>을 곁들여 보면 방이 더 넓어진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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