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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인도에 단 한 권의 책만 들고 갈 수 있다면?”이라는 성미 급한 질문을 누군가 건낸다면 나는 과연 “성경이요”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아마 아닐 것이다. 답변은 매년 바뀌고 있다. 오늘은 왜 나는 읽는 존재가 되었나를 돌아보려고 한다. 필자가 언급한 이유들이 너무 일관성이 없게 느껴지거나, 또는 소개하는 책들이 당신의 취향이 아님을 발견하거나 둘 중 하나일 확률이 아마 높을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예술 도서 서평집 <혼자가 되는 책들>의 저자 최원호가 누군가가 추천한 책을 읽는 일에 대해 묘사한 대목을 빌려오고자 한다.


 “‘여기, 보물을 숨긴 섬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다만 나는 다른 이들이 그 섬에서 무엇을 발견할지는 알 수 없다. 사람은 자신의 시야 안에 들어오는 것들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다.“(7면)


남보다 평균 이상으로 고민하게 되는 문제를 다루려고 읽기

 ‘우리는 디지털 시대에 믿음을 키워가고 있다’라는 화두는 20대 내내 내게 들러붙어있다. 본업이 소셜마케팅이 되면서부터 이 화두는 더욱 커졌다.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 문제일 수 있다. 그런데 당신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상황에 미혹되지 않기 위해 아예 눈을 감아버린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러한 시대적 조건을 어떻게 취하고, 버릴지 가려내기 위한 독서를 해볼 수 있다. 단순히 하루 중 많은 시간동안 SNS를 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하느냐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연결성, 이를테면 1차적으로 함께 모이기에 힘쓰는 모임을 가지고 2차적으로 그것을 온라인에 인증하며 잠들기 직전까지 공동체로부터 퇴근하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들이다. 한병철의 <투명사회>는 서로를 전시하고, 소속감과 피로감을 동시에 느끼는 시대를 보여주는 사회 비평서로, 이를 통해 SNS 계정이 있는 청년 그리스도인으로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고민에 깊이를 더할 수 있다.


자신만의 언어를 가진 작가의 표현을 엿들으려고 읽기

 다시 주일의 모임으로 돌아와보자. 지난 한 주는 모든 것이 은혜였다고 설명하고 마는 사람과, 자신만의 비유법과 표현으로 그가 경험한 하나님을 꺼내어 놓는 사람은 다르다. 지난주에 친구가 “내 삶에서 공동체가 아닌 순간은 (집에서 오분거리에 있는) 회사로 가는 횡단보도 두 개 밖에 없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럼 횡단보도 두 개를 제외한 나머지 면적에서의 일상이 자연스레 궁금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재기 넘치는 표현들은 요네하라 마리의 <발명 마니아>, 또는 빌 브라이슨이 집필한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 등에서 엿볼 수 있다. 두 저자의 특징은 밝은 것만을 밝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곁에 있는 것들을 가장 자신답게 설명하는 데에 있다. 이러한 독서는 매 주 돌아오는 소그룹 나눔시간에 항상 똑같고, 비슷한 것 같아보여도 나의 삶을 다양한 언어로 설명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좁은 품 안에 품을 수 있는 범위를 넓혀가려고 읽기

 누가복음에서 말하는 이웃의 범위는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낮은 자 한 사람‘이 있는 곳이라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연대해야 할 이웃은 아주 가까이에서부터 지평선 너머의 어딘가까지 넓게 뻗어있다. 누군지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 “그들을 저도 하나님의 마음과 시선으로 보게 하시고”라고만 무턱대고 기도하기 보다는, 구체적으로 그들이 겪고 있는 부조리와 구조적 한계를 담은 책을 먼저 읽고 고민해보는 것도 좋다. 물론 이렇게 모르는 세계를 알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독서는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이런 일이 그 때도 존재했고, 아직도 존재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데에 가장 큰 의미가 있다. 인권문제에 대해 쉽게 쓴 김두식의 <불편해도 괜찮아>가 이런 점에서 도움이 되었다.


딱 우리 나이대의 작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궁금해서 읽기

 끝으로,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구매해 읽는 것은 필자가 즐겨하는 연간 이벤트 중 하나이다. 김수연의 <브라더 케빈>을 읽은 이후로 그 다음 해에는 정지향의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를, 그리고 올해는 임솔아의 <최선의 삶>을 꾸준히 사서 읽고 있다. 수상 발표를 한 이후로 6개월이 지나면 단행본이 출간되는 방식이다. ‘대학소설상’의 타이틀이 붙은 한 권의 소설을 읽는 것은 동시대 우리와 연령대가 비슷한 한 사람의 삶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는 일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어느새 친구를 한 명 더 사귀는 기분이랄까. 여기까지 왔다면 스물 네 살에 최연소로 일본의 문학상인 나오키 상을 수상한 아사이 료의 소설 <누구>를 읽는 것부터 시작하자. 지금까지 늘어놓은 책들 중 가장 빨리 읽히는 책이니까.


 누가 뭐래도 일년 중 책 읽기에 가장 좋은 9월이다. 당신이 이번 계절에 인생의 책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덥썩 응원하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 읽는 존재로 지내보는 일의 고고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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