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올해는 필자가 이십대 내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결혼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는 해가 될 줄 알았는데 금세 이렇게 또 해를 넘기고만 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남편과 아내가 주인공인 두 권의 소설을 골라 보았다.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이건 ‘낭만적’인 것 같지만, 재난의 예고이다.” (282면) 

 그동안 부지런히 책을 내왔지만 장편소설을 들고 돌아온 건 21년만인 알랭 드 보통이 묻는다. 당신은 친구 부부나 또는 부모님이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진심으로 궁금한가요? 애정 어린 첫 고백의 제안과 승낙이 이루어지던 날 두 사람 사이에서 어떤 핑크빛의 역사가 쓰여졌는지에 대해 정말 듣고 싶은건가요?

 로맨스가 얼마나 로맨틱하게 시작되었건 부부가 된 순간 이제 그들에게 남겨진 것은 함께 살아내야 하는 일상이다. 총 5부로 구성 된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1부의 끄트머리에서 라비는 커스틴에게 청혼을 하고, 그녀는 그의 구애를 받아들인다. 제목 속 ‘그 후의 일상’이 낭만적이면 좋으련만.

 읽기 전부터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겠지만 같이 사는 건 힘든 일이다. 이 소설의 남은 분량에서는 부부로서 사는 삶의 곤혹스러움이 심리학 용어와 철학 지론을 빌어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아마 많은 부부가 실제로 이런 기대를 가지고 있으나 들키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대사회는 부부가 모든 면에서 평등하기를 기대한다지만, 실제로는 고통의 평등을 기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194면)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처음 만난 순간을 ‘낭만적’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따뜻한 느낌, 깊은 이해와 헤아림을 받는 기분, 어느덧 그런 경험이 지속되지 않음을 알았을 때 우리는 그분과의 첫사랑을 회복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서 처음은 지나가버렸다. 라비와 커스틴이 풋내 나는 연애를 지나쳐 마치 ‘열두 번은 이혼과 재혼을 겪’는 것 같은 관계를 이어가듯, 그분과 우리 사이도 얼마든지 재난의 한 가운데 같을 수 있고 그것은 여전히 사랑이다.


제임스 설터, 『가벼운 나날』

“삶은 날씨고 삶은 식사다.” (52면)

 이 소설은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의 주인공들과 비슷한 연령대에서 중년으로 향하는 부부의 삶을 보여준다. 비리와 네드라는 뉴욕 근교의 고요한 동네에서 핫지라는 이름을 가진 개 그리고 아이들과 평화롭게 함께 살고 있다.

 이 부부는 사람들과의 흘러 넘치는 만남 그리고 끝없는 대화 속에서 사랑과 우정을 나눈다. 이들과 비슷한 축을 공유하는 피터와 캐서린, 아노드와 이브 외에도 많은 부부들은 완벽하게 만족하는 결혼생활을 누리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40대 중반이 된 네드라가 어떤 선택을 한 기점부터 그녀는 스스로 온전함을 느끼다가 곧 초라함을 느끼기를 반복하며 삶을 살게 된다. 

 『가벼운 나날』은 천천히 그려지고 있는 그림 같은 소설이다. 영미권 작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삶은 날씨고 삶은 식사다’와 같은 제임스 설터의 아름다운 문장 덕분이기도, 미국-유럽을 넘나드는 풍경의 묘사 덕분이기도 하다. 아주 천천히 그려지는 탓에 초록빛의 새순과 빛이 바랜 낙엽이 마치 하나의 캔버스 안에 들어있는 것만 같다.

 삶과, 사랑이 더 나아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 앞에 펼쳐진 날들을 지속적으로 살아보려 하는 사람에게 이 소설은 유효할 것이다. 묵직한 중심과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있는 그대로의 나로 지내는 하루하루가 너무 가벼운 나날이어도 괜찮다고. 그게 우리에게 허락 된 이 땅에서의 시간에 대한 제임스 설터 식의 해석일 것이다.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