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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사실들이 허다하다. 시계 초침은 그 때나 지금이나 늘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든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든가, 그리고 변하지 않던 사람은 결국 죽는다든가 하는 것들. 전도서 2장 16절이 증거하듯 “슬기로운 사람도 죽고 어리석은 사람도 죽는다.” 그렇다면 가까운 이를 떠나보낸 슬기롭거나 어리석은 사람의 삶도 그 전과 같을 수 있을까? 남겨진 이가 적어내린 두 권의 책을 소개한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2016, 반비)


엄마가 될 가능성이 적다는 생각을 종종 하면서, 더욱이 가해자의 엄마가 될 가능성은 더 적을 것이다는 생각을 이 책의 제목을 보는 동시에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저자가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수식어들이 많았을 텐데 왜 ‘가해자의 엄마’일 수 밖에 없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1999년 콜럼바인 총격 사건에서 13명을 살해한 가해자들 중 한 사람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 수 클리볼드의 기록이다.
그런 아이가 아니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버렸고, 딜런은 총기 난사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아무런 대답도 들려줄 수 없게 되었다. 수는 안개가 너무 많은 것을 삼켜버리기 전에 성실하게 일기를 썼다. 자신의 아들에 대한 신빙성 있는 진술을 위해, 그리고 새로운 정체성으로 남은 삶을 살아야 할 자기 자신을 위해.
딜런이 보였던 사소한 징후나 서로 나누었던 대화들을 복기하는 것뿐 아니라 딜런이 참사를 준비하는 몇 주간 촬영했던 비디오를 보면서 수는 희생자 가족에게 편지를 쓰고, 참사의 원인을 넘겨짚는 뉴스들을 보고, 동료들의 배려로 복직을 한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자신의 아들이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엄마로서 뭐라도 했을테지만,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렇게 철저히 몰랐을까. 그녀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쓴 문구를 붙잡는다. “지금은 그 질문을 살아야 한다.”(245면)
이 책은 저자 스스로의 일기를 인용하여 재작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사건진술서이다. 친절하고 자세하게 적혀있지만 읽으면서 감히 공감의 한 자락을 내어 주는 게 쉽지는 않다. 수업료로 치면 너무나 비싼 비극이 있다. 독자로서 먼저 그 값을 지불한 이가 남긴 질문을 함께 살아보는 건 어떨까.

『언니 마리』, 이노우에 유리 (2017, 마음산책)


필자는 전 세계의 여성 작가들 중 요네하라 마리보다 더 유쾌한 글을 쓰는 사람을 이제껏 본 적이 없다. 러시아어 동시통역사 요네하라 마리는 소설, 에세이를 포함해 국내에도 이미 열 여섯권의 책이 번역되어 있는 작가로, 『언니 마리』는 그녀의 세 살 터울 동생이 작고한 언니를 기리며 적은 책이다.
언니의 두루 넓은 관심사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유머러스한 문체를 과연 동생에게서도 조금이나마 찾아볼 수 있을까 싶은 노파심 같은 건 첫 번째 챕터를 읽자마자 사라진다. 이노우에 유리는 모든 것을 기록하는 언니의 레이더에 걸려 몇 권에 걸친 언니의 저서 속에서 묘사되어왔던 자신의 모습들 중 서로 기억이 다른 부분을 정정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그 때 내가 운 이유는 언니가 예측했던 그 이유 때문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이다. 재미있고 통쾌하다.
일본의 공산당간부이자 지하운동가였던 아버지를 따라 일가족의 거취가 달라지면서 마리와 유리는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에 출석했다. 아버지가 국제적으로 대우를 받는 시기에는 덕분에 얄타, 세바스토폴, 소치, 알바니아 등 지명이 생소한 곳 뿐 아니라 광동, 모스크바에서 함께 잘 먹고, 잘 노는 유년기를 보냈다. 여느 자매처럼 하나의 옷을 두고 소매를 잡아당기며 싸우거나, 이상형 이야기를 하느라 이불 속에서 밤을 지새우는 클리셰한 자매의 일상은 볼 수 없지만 말이다.
고인이 남긴 엄청난 양의 저서와 기고글을 가장 가까웠던 이가 모아서 읽고, 살을 붙여서 또 다른 글을 쓰는 일이 고인에 대한 기억을 더 생생하게 만들어준다. 이 책은 어느 자매만의 이야기로 고여 있지 않고 다른 독자들에게로 확장되고 싶어한다. 가까운 이의 죽음이 남겨진 이에게 두고 가는 것은 슬픔만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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