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흥얼거렸던 노래에 따르면 동대문은 열두시가 되면(은) 문이 닫혔다. 하지만 2016년에 열린 게이트는 닫힐 줄 몰랐고 그 문턱으로는 연일 이어지는 뉴스라는 이름의 기나긴 꼬리가 지나다녔다. 어떤 사람들은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아 예전만큼 영화를 보는 일에서 재미를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실제로, 100만개의 촛불은 영화 속 100만명의 엑스트라가 들고 있는 소품이 아니었다. 지난 한 해 우리는 답답했고 그 어느 때보다 답을 찾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만난 몇 권의 책들은 지금보다 더 나은 곳을 겨우 희망하는 바람잡이 역할을 해주었다.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이 책은 한국에서 30대 여성으로서 표준의 삶을 꾸려가는 김지영씨의 이야기이다. 정말 이렇게나 간단하게 요약되는 소설을 왜 ..
올해는 필자가 이십대 내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결혼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는 해가 될 줄 알았는데 금세 이렇게 또 해를 넘기고만 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남편과 아내가 주인공인 두 권의 소설을 골라 보았다.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건 ‘낭만적’인 것 같지만, 재난의 예고이다.” (282면) 그동안 부지런히 책을 내왔지만 장편소설을 들고 돌아온 건 21년만인 알랭 드 보통이 묻는다. 당신은 친구 부부나 또는 부모님이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진심으로 궁금한가요? 애정 어린 첫 고백의 제안과 승낙이 이루어지던 날 두 사람 사이에서 어떤 핑크빛의 역사가 쓰여졌는지에 대해 정말 듣고 싶은건가요? 로맨스가 얼마나 로맨틱하게 시작되었건 부부가 된 순간 이제 그들에게 남겨진 것은 ..
OECD 회원국 중 국내의 노동자가 하루 평균 일하는 시간이 최장이라는 내용의 통계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은 이제 진부한 일이 되어버렸다. 얼마나 일하든, 어떤 일을 하든, 당신의 정체성은 분명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이다. 그래서 오늘은 소설 속, 에세이 속 필자가 좋아하는 두 노동자를 소개하려고 한다. 나쓰메 소세키, 『도련님』 도쿄 태생의 도련님은 반드시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지 않지만 대학 졸업 후 단 8일만에 운 좋게도 중학교 수학교사 자리를 제안 받는다. 첫 단추가 꿰어져도, 너무 술술 꿰어지는 이 취준의 서사를 보고 있으면 어떤 독자는 배가 아플지도 모른다. 이 소설이 재미있는 건, 도련님이 수학적 지식을 가지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수업 및 개인 교습 장면이라든가, 하다못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