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과 일정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이는 무척 큰 딜레마에 빠져있는 사람이다. 줄자로 잴 수는 없으니 적정선을 지키기 위해서 결국 언제나 관계망으로 돌아가 촉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건강한 거리감’을 원할 뿐인데 말이다. 그런 거리감이 있을까? 이건 어쩌면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같은 소리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거리두기에 대해 다방면으로 설명하는 두 권의 책을 소개한다. 『약한 연결』, 아즈마 히로키 (2016, 북노마드) 초록색 포털 사이트가 현재 시각 1위부터 10위까지의 ‘인기검색어’가 무엇인지 뿐 아니라, 묻지 않았지만 ‘싱글녀 인기검색어’와 ‘직장인 인기검색어’의 리스트도 함께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언젠가 공개에 동의했을 개인..
필요에 의해 많은 것을 발명하는 현대인은 ‘피톤치드 스프레이’를 만들었다. 그것을 뿌리면 부지런히 우리를 괴롭히는 미세먼지나, 새집증후군을 제거하는데에 도움이 되는 덕이다. 산으로, 숲으로 가서 한껏 피톤치드를 들이마시는 것이 더 좋은 일이겠지만, 여의치 않다면 풀내음 나는 책을 골라 읽기를 권한다. 『랩 걸』, 호프 자런 (2017, 알마) 뿌리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기껏해야 거울을 보며 ‘아 뿌염을 해야할 때가 되었구나’하고 알아차릴 때 뿐이었다. 그러나 본래 뿌리라는 건 보다 더 위엄이 있는 무언가가 아니었던가. 여기, 나무의 뿌리부터 열매까지 연구하는 과학자 호프 자런의 자서전 『랩 걸』이 있다. 이 책의 본문은 아리따 글꼴로 인쇄되었는데 ‘뿌리와 이파리’, ‘나무와 옹이’, ‘꽃과 열매’ 같은..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사실들이 허다하다. 시계 초침은 그 때나 지금이나 늘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든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든가, 그리고 변하지 않던 사람은 결국 죽는다든가 하는 것들. 전도서 2장 16절이 증거하듯 “슬기로운 사람도 죽고 어리석은 사람도 죽는다.” 그렇다면 가까운 이를 떠나보낸 슬기롭거나 어리석은 사람의 삶도 그 전과 같을 수 있을까? 남겨진 이가 적어내린 두 권의 책을 소개한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2016, 반비) 엄마가 될 가능성이 적다는 생각을 종종 하면서, 더욱이 가해자의 엄마가 될 가능성은 더 적을 것이다는 생각을 이 책의 제목을 보는 동시에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저자가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수식어들이 많았을 텐데 왜 ‘가해자의 엄마’일 ..
라는 에세이집이 요즘 서점에서 핫합니다. 보람 따위는 됐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를 자문하려 하지만 매일 밤 퇴근해서는 내일을 위해 잠에 빠져들기 일쑤죠.널리 사회를 이롭게 할 수는 없더라도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이득을 끼치지 못하면서 나 스스로가 더 나은 인간이 되는데도 보탬이 되지 못하는 하루하루를 쌓아가고 있는 우리를 누군가는 '사회초년생'이라 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청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청춘'이라는 이름이 어색합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누구부터 누구까지가, 과연 어떠한 기준에 따라 청춘으로 분류될 수 있을지 갈수록 잘 모르겠고, 그렇게 불릴만한 삶을 사는 것은 어떤 모양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여행지에 가서 셀카봉을 들고 빙빙 돌며 해맑은 표정을 몇십초 동안 ..
어릴 적 흥얼거렸던 노래에 따르면 동대문은 열두시가 되면(은) 문이 닫혔다. 하지만 2016년에 열린 게이트는 닫힐 줄 몰랐고 그 문턱으로는 연일 이어지는 뉴스라는 이름의 기나긴 꼬리가 지나다녔다. 어떤 사람들은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아 예전만큼 영화를 보는 일에서 재미를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실제로, 100만개의 촛불은 영화 속 100만명의 엑스트라가 들고 있는 소품이 아니었다. 지난 한 해 우리는 답답했고 그 어느 때보다 답을 찾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만난 몇 권의 책들은 지금보다 더 나은 곳을 겨우 희망하는 바람잡이 역할을 해주었다.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이 책은 한국에서 30대 여성으로서 표준의 삶을 꾸려가는 김지영씨의 이야기이다. 정말 이렇게나 간단하게 요약되는 소설을 왜 ..
올해는 필자가 이십대 내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결혼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는 해가 될 줄 알았는데 금세 이렇게 또 해를 넘기고만 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남편과 아내가 주인공인 두 권의 소설을 골라 보았다.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건 ‘낭만적’인 것 같지만, 재난의 예고이다.” (282면) 그동안 부지런히 책을 내왔지만 장편소설을 들고 돌아온 건 21년만인 알랭 드 보통이 묻는다. 당신은 친구 부부나 또는 부모님이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진심으로 궁금한가요? 애정 어린 첫 고백의 제안과 승낙이 이루어지던 날 두 사람 사이에서 어떤 핑크빛의 역사가 쓰여졌는지에 대해 정말 듣고 싶은건가요? 로맨스가 얼마나 로맨틱하게 시작되었건 부부가 된 순간 이제 그들에게 남겨진 것은 ..
OECD 회원국 중 국내의 노동자가 하루 평균 일하는 시간이 최장이라는 내용의 통계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은 이제 진부한 일이 되어버렸다. 얼마나 일하든, 어떤 일을 하든, 당신의 정체성은 분명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이다. 그래서 오늘은 소설 속, 에세이 속 필자가 좋아하는 두 노동자를 소개하려고 한다. 나쓰메 소세키, 『도련님』 도쿄 태생의 도련님은 반드시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지 않지만 대학 졸업 후 단 8일만에 운 좋게도 중학교 수학교사 자리를 제안 받는다. 첫 단추가 꿰어져도, 너무 술술 꿰어지는 이 취준의 서사를 보고 있으면 어떤 독자는 배가 아플지도 모른다. 이 소설이 재미있는 건, 도련님이 수학적 지식을 가지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수업 및 개인 교습 장면이라든가, 하다못해 ..
“무인도에 단 한 권의 책만 들고 갈 수 있다면?”이라는 성미 급한 질문을 누군가 건낸다면 나는 과연 “성경이요”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아마 아닐 것이다. 답변은 매년 바뀌고 있다. 오늘은 왜 나는 읽는 존재가 되었나를 돌아보려고 한다. 필자가 언급한 이유들이 너무 일관성이 없게 느껴지거나, 또는 소개하는 책들이 당신의 취향이 아님을 발견하거나 둘 중 하나일 확률이 아마 높을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예술 도서 서평집 의 저자 최원호가 누군가가 추천한 책을 읽는 일에 대해 묘사한 대목을 빌려오고자 한다. “‘여기, 보물을 숨긴 섬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다만 나는 다른 이들이 그 섬에서 무엇을 발견할지는 알 수 없다. 사람은 자신의 시야 안에 들어오는 것들만 발견할 수 있기..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일 뿐 아니라, 떠나기 좋은 휴가 또는 방학의 시절이기도 하다. 의례적으로 너도나도 한 두권의 책을 머리맡에 놓아 두게 되는 독서의 계절 가을을 맞기 전에, 여름 휴가시즌은 책 읽기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떠남'을 소재로 하면서도 서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소설과 산문을 골라보았다. 무라카미 류, 『희망의 나라로 엑소더스』 사실 현대인들이 훌쩍 떠나고 싶어 하는 곳은 죽기 전에 꼭 봐야하는 세계 명소가 아니라 ‘희망의 나라’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일지 모른다.『희망의 나라로 엑소더스』는 무언가 결정적인 것을 놓친채로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는 현재의 일본으로부터 빠져나와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상상 속의 유토피아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모습이 ..
일본의 락페스티벌 섬머소닉을 올 해 가야만 하겠다라고 결정한건 5월 12일, 공연이 진행되는 두 도시 중 도쿄행을 결정한 건 5월 13일. 떠나기 전에 그러니까 50만원을 지출한겁니까 소데스까... 이것은 합리적이지 않은 2016년 여름휴가의 준비록. 종종, 기록을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이번주 금요일에는 워밍업으로 '초여름'휴가를 떠납니다. 저는 잘 못 지내요. 휴가를 사랑하는 소시민으로서. 하지만 늘 생각해요. 이정도면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인사를 건내야만 하는거라고.
몇 해 전, 미국의 어느 학교로 어학연수를 갔던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어학으로부터 최선을 다해 멀어졌다. 이국에서 겪는 낯선 경험들을 우리말이 아닌 낯선 언어로 매주 보고하듯 발표하던 수업 ‘스피킹의 기초’ 학점이 충격적으로 낮았기 때문은 아니다. 그 즈음의 나를 가장 적절한 단어들을 써서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일이 더 이상 소박한 일상이 될 수 없음을 알게 된 지점부터 한국어가 아닌 모든 것에 흥미를 잃었을 뿐이었다. 『멀고도 가까운』과『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는 영어, 곧 나의 실패한 언어를 오랜만에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실패할 것 같더라도 수단과 방법을 개의치 않고 이어져야만 하는 ‘이야기’에 대해 말한다. 레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어느 날 어머니의 집 앞뜰에 있는 살구나무에서..
닿고 나서야 떼어날 수 있는 삶의 무료함- 김엄지, 에 대하여 꼭 월요일에 읽고 싶은 책이었다. “서로의 불만에 관심이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회사 동료들과 점심에 뭘 먹을까를 아침부터 정겹게 고민하다 결국 어렵게 고른 점심 메뉴에서 아침부터 먹던 커피 맛이 나는 그런 별 수 없는 월요일 퇴근길에, 쭉 같이 있던 동료들보다 조금만 먼저 회사를 빠져나와 를 읽고 싶었다. 누군가는 출근과 비를 싫어하겠지만, 실상 소설 속 E에게는 주말이나 산책마저도 끔찍할 수 있다. 제목에 나열 된 총 다섯 개의 단어들은 두드러진 연관성을 가지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주말출근'이 아니라 '주말' 쉼표 찍고 '출근'이다. 일하는 현대인을 설명하는 다양한 비유들이 있으나 나는 쳇바퀴를 도는 투명한 다람쥐인간이 된 기분을 ..
언제까지나 되풀이 될 접속사- 장강명, 에 대하여 에서 최원호는 누군가에게 음악을 추천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말한다. 생각해보면 그러한 종류의 어려움은 우리가 겪는 여러가지의 어려움들 중 꽤 본질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남과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상대가 자신만의 해변을 원한다 할지라도 기껏해야 관광지로서의 바다에 데려다 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로가 영영 다른 곳을 여행 할 운명이다. 소설을 좋아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 때 소설을 추천하지 않을 이유는 이것으로 충분히 설명이 되었다. 너는 나보다 이걸 좋아할 수 없을 것 같고, 너는 나만큼 이걸 싫어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러나 의 초판이 나온 날인 1년 전 어버이날부터 나는 어버이 뿐 아니라 대가족의 구성원이라고 ..
뻔하지만 종종 믿기 힘든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하나님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일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평범하다. 성경은 딱 우리만큼 평범한 사람들이 콩처럼 뿌려져 있는 밭과도 같다. 일단 등장인물이 해도해도 너무 많다. 나는 성경 읽기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대신, 자서전을 읽기에 대하여 말할 것이다. 한 사람의 이야기에 시간을 들여 집중하는 일이 당신을 어떻게 움직이게 하는지에 대하여. 올리버 색스, 『온 더 무브』 자서전은 그 사람을 설명하는 문장의 마침표일까, 아니면 첫 번째로 등장하는 단어일까? 『온 더 무브』는 후자와 같다. 당신이 올리버 색스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 봤다면, 국내에 번역 된 열 권이 훌쩍 넘는 그의 저서들을 제쳐두고 이 책부터 읽기를 권한다. 올리버 색스는 신경과 전문의..
이만하면 선방하면서 살고 있는거라고, 내가 최악의 어른인 것은 아닌거라고, 그렇게 대부분의 시간들엔 안도감을 느끼지만 그래도 인간으로 존재하다보면 이만큼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니까. 나는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엔 없는 거라고. 그렇게 나에게 져주면서 살고 있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것만큼 흔한 문장도 없다. 언제를 살든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을테니까. 그래도 지난 6개월을 말하자면 여전히 많은 일들이 일어났었으며, 그 와중에 새로운 나의 모습들이 피어났었다. 피어났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건 (이쯤에서, 가인의 '피어나'라는 노래는 굉장히 명곡인데) 나는 지난 10년동안 (6개월 이야기를 하다가 10년 이야기로 난 데 없이 넘어가다니..
저작권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다음번 실수의 가능성 앞에서 누구나 무감해지지 않을 정도의 정확한 기준은 필요하다. 그러나 내일이 되면 우리는 어김없이 서로 억울해지고 말 것이다. 스마트폰거북이들의 행진을 멈출 수 있게 하는 건 없다. 목을 기울이는 것으로 기울어진 세계를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믿는 행진이 전세계에서 적극적으로 되풀이 되고 있다. 사표말풍선으로 첩첩산중 안개가 이는 공간에 앉아 있다보면 아홉시간이 흐른다. 내일의 날씨도 오늘과 똑같을 것이다. 그러는동안 프린트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150915한 여름 밤의 북클럽 과제발터 벤야민적으로 쓰기nonfiction
'죽을 맛이다'라는 말은 유용한 말이다. 영어에도 "The longest hour of my life"이라는 표현이 있는 것을 보면 길게든, 깊게든 죽을 맛을 경험하는 것이 지구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모든 이의 삶의 기초 양식이라는 점을 짐작해볼 수 있다. 물론, 우리는 그 말을 듣는 입장에 있게 될 때마다 '네가 어느 정도로 죽을 맛이길래 그래, 나보다?' 라든가 '아아, 내가 저 사람이라면 정말 정말 죽을 맛이겠다. 저 사람이 살아남아 있는건 기적이야.' 등의 은밀한 저울질을 한다. 죽을 맛의 정도라는 건 이를테면, '동대문 엽기 떡볶이'의 떡볶이 매운 맛의 강도처럼, 1단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 맵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2단계를 향한 도전 의식을 거뜬히 불러일으키고, 단골 고객이 되게끔 하는 그런..
니콜 크라우스 발췌 7문장 1. 묘사할 수 없는 세계에 산다는 건 너무 외로웠다. (16p)2. 이파리 하나를 그리기 위해 모든 풍경을 포기해야 한다. (67p)3. 엄마는 작가에게 사후 노벨상을 주는 버릇이 있었다.(70p)4. 내가 울었을 수도 있다. 그래봤자 달라질 것도 없지. (114p)5. 그 순간은 이미 지나갔고, 우리가 살 수도 있었을 삶과 우리가 살아온 삶 사이의 문이 우리 면전에서, 아니, 내 면전에서 쾅 닫혀버렸다. (123p)6. 지금까지도 모든 감정들이 전부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 (152p)7. 그리고 그 때 감정의 역사에서 수백만 번 째로, 그의 가슴이 요동쳤고, 그 충격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152p) / 성선설과 성악설 중 어느 쪽을 더 믿고 가야 하는 것인가 싶을 때마다..
그 나라의 남자는 금방 운다. 금방 운다는 것이 자주 운다거나, 잘 운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금방'이라는 말은, 해야 할 일을 모두 다 마칠 때까지 기다림을 머금고 있을 때 하는 행동에 잘 어울린다. 오십년 전만 해도 그 나라 사람들은 "울며 겨자 먹기"라는 말을 즐겨 썼다고 한다. 어떤 일을 하면서 동시에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니, 그만한 잔재주를 가진 사람을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 나라의 가옥구조는 파마의 방이 있는 구조와, 그렇지 않은 구조로 나뉘어진다. 사람들은 더이상 더 넓은 집에서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오직 파마의 방이 있는 집에서 자고, 일어나는 삶을 꿈 꿀 뿐이다. 파마의 방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양파와 마늘이 아주 잘게 다져져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기 전까지는 입..
월-금까지의 회사 공동체와 주일 및 토요일 및 등등의 교회 공동체에서 이젠 어딜가도 그 그룹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나는 말의 무게와 행동의 책임감을 절감하며 지내고 있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게 목표는 아니다. "언니는/누나는/너는 좋은 사람이야"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건 덤으로 주어지는 것일 뿐. 애초부터 나는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기보단 적절한 사람이고 싶다. 그들이 나를 만나면서 지금은 물음표가 많이 찍혀있을지라도 언젠가 돌이켜보면 그 만남이 무시할 수 없는 시간들이었구나, 하고 느낄 수 있게 된다면? 이것이 바로 내가 정의내린 적절성이다. 지난 주에는 나와 어떤 사람이 서로 적절한 사이가 아니고, 앞으로도 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한 지점이 있었다. 상대의 진로를 놓고 고민을 하는데 꽤 ..
성금요예배 전, 두번째 멤버와 한시간반 남짓의 짧은 원투원을 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대면할 때 이야기의 주도권이라는게 있다면(그 친구는 '역학관계'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나는 아마도 그 친구에게 종종 밀려버린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래서일까, 그 친구를 만나러 가는길에는 매도 먼저 맞으면 낫다는 격언이 두 차례나 떠오르기도 했다. 어머. 정작 만나보니 별로 매 맞는 기분은 아니었다. "(저는) 여자 리더가 처음이라 너무너무 좋다"라고 이야기해주는 걸 들으니 나도 편해졌다. 하긴 그건 나여서가 아니라 우리가 같은 여자여서 좋다는 것이니까. 그 친구의 메인 컨셉이라고 할 수 있는 '솔직함'이라는 것은 뭘까. 많은 사람들은 그 솔직함에 상처를 받거나, 놀라워 하는데,..
트리플로 훈련을 받고나니 이제 아까워서 무를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9월에 공동체 제자 훈련, 12월에 언약 가족 훈련, 1월에 결목자 훈련까지그리고나서 4주 전에 나는 목자가 되었다.목자는 결이라고 부르는 작은 그룹을 이끈다. 공항 보안검색대가 아닌 바에야 이보다 더 반복되는 훈련이라 하여도 사람을 완벽하게 검증할 수는 없다.요한복음에서 말하고 있는 '양떼'를 칠만한 사람이 바로 이 자라는 검증 말이다.스무살 때나, 스물 여덟 살이 되서나 늘 '자기 앞가림'이 청춘의 메인 구성요소가 되야 합니다 라는 목소리들 속에서그래도 종교적 시야로 볼 때 나와 우리는 믿는 구석이 있어 내 앞을 가릴 시간에 남들과 함께 있기를 선택하게 되었다. 아아, 나의 첫 번째 목자 경험이 5년 전 모교회에서였고 그 때 난..
대충 80일만에 "만나자"고 운을 띄워준 A를 만났다. 쥘 베른은 라는 제목의 책을 썼으니 누구는 세계일주를 하는동안 나는 기다림으로 일관해야했던 참 기나긴 시간이었다. A는 지난 11월 우울증을 진단 받았다. 그리고서는 자신을 위해 치유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며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었다. 나는 평균적으로 십일에 한번씩은 안부를 묻는 연락을 해왔던 것 같다. "잘 지내?"라는 질문에 포함 된 '잘'이라는 단어가 그 친구에게 얼마나 부질없고 가볍게 느껴질까 싶어 한 번도 잘 지내냐고는 말하지 못했다. 살아있냐는 표현을 가장 자주 썼던 것 같고, 답장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었다. 그러다 지난주말, 최근 두 번 정도 자살시도를 했었다는 내용의 문자메세지를 받곤 아무렇지 않은 척 만나면 뭘 ..
상수동에서 시작한 북모임에서을 엄청 재미 없게 읽고나서 내가 우리 다음엔 이거 읽어보자 하며 선정했으나 임시 중지 상태인 우리들의 두번째 책. 어쨌든 나도 지각하며 읽었는데, 하이라이트 대목은 두 개가 있다.하나는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 전문.또 다른 하나는 사직서 전문.이것들은 너무 길기 떄문에 (...) 세번째 하이라이트인 나머지 구절들만 적어본다. 너라는 우주에 나를 부치다저자김경 지음출판사이야기나무 | 2014-10-20 출간카테고리소설책소개[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 김경의 첫 소설!취향에 이끌려 ... 거의 아무 방문자도 받지 않고, 그리곤 41년 만에 나타난 친구 콘라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삶은 인간에게 무엇이든 줄 수 있고 또 인간은 삶에서 무엇이든 얻을 수 있네. 그러나 인간의 취향,..
주일 오후에 예기치 않은 시간을 벌게 되어 간만에 서점에 가서 가만히 오래 있었다. 어제까지의 수련회에서 내가 가장 영향 받고 싶었던 메세지는 마음이 따뜻한 자매님이 되어라, 가 아닌 바로 머리를 써서 너만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어라, 였다. 그래서 프라이머리의 노래제목처럼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는데, 물론 방정리가 오래 걸리는 일이듯, 마찬가지로 무언가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는 일은 오래 걸리는 일이겠으나 그래도 언제까지고 '언젠가는 할꺼야 그 정리'라고 하면 안될 것 같아서 젊은어른 프로젝트를 레디 셋 고! 하고자 한다. 나의 친구들은 대개 자신이 이번 해에 28살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기 싫어하고 그 숫자를 발음하기 싫어한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젊은어른으로 자랄 수 있다면 진짜..
누구나 정도는 다를지라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을까를 두고 고민 한다. 다 잘 될거라는 식의 값싼 낙관주의가 필요한 사람은 아주 일부분일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가 구축해놓은 꿈과 이상을 바라보며 나아간다. 그런데 이건 개인이 어떤 굴레 속에서 살고있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각종 상황에서 각종 이유들로 실패자가 되었던 경험을 이겨내기 위해 마음의 근육이나 주체적인 의지를 기르라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폭력일 수 있다. 나는 그런 사람 중 한 명인 그 친구에게 "니 맘 다 알아", "나도 비슷하게 그랬던 적이 있는데", "너무 극단적인 생각만 안 하면 괜찮지 않을까?" 같은 말들을 할 수 없고 안타까움이나 슬픔, 처절한 심리를 드러내놓을 수도 없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든 한 편의 영화같은 삶을 살기를 꿈꾸지만 그렇게 사는 대신에 오늘은 무슨 영화를 볼까 하고 고민한다. 그러나 영화같다 라는 말보단 소설 쓰고 있네 라는 말이 어쩐지 더 듣기 좋았던 나는 작년까지만 해도 영화관에 가는 빈도가 계절에 겨우 한두 번 정도 되는 정도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중복 관람까지 합하면 올 해 갑자기 40회 정도로 관람 횟수를 끌어올리게 되었는데(여기다가 집에서 TV로 또는 노트북으로 본 영화는 25편정도) 내 멋대로 어워즈 시즌이 되어 생각해보니 정말 이 같은 결과에 기여하게 된 요인들이 여러가지인 것이다. 우선은, 나의 경제력. 올 봄부터 고정적인 수입이 생겼다 여름이 되니 말게 된 나에게는 벌어놓은 문화비라는게 생겼는데, 한창 여름일 적의 나는 이걸로..
Dirty loops는 순전히 김동률 덕분에 알게 되었다. 올해도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음악들을 많이 듣고 알 수 있는 해였는데, 그 모호한 을 넘어서 가끔은 "정말 그 모든 것을 갖췄"고, "사람을 깜짝 깜짝 놀라게" 하는 음악을 듣고 알고 싶어 질 때가 있다. 정확히 7월 12일부터 이 밴드의 한장 밖에 없는 앨범을 끼고 들었다. 너무 좋으니까 트위터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은 볼멘소리로 내한 해주세요 해달라고여 했었는데, 존 메이어 같은 경우에는 내한을 4년 정도 주기적으로 울부 짖고나니 드디어 왔었기에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설마 올해 안에 보게 되었고, 일찍이 이뤄진 티켓팅에서 입장번호 10번대를 잡아두고 있다가 긴축재정으로 표를 놓고는 그래 내가 나중에 스웨덴을 가면 되지요, 하고 있던 공연을 ..
1 이동진- 이 소설 자체에서 앞부분을 內(안 내)자를 쓰시고, 후반부를 外(바깥 외)자를 쓰시고, 일종의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부분을 다시 바깥이라는 의미에서 再, 外(두번 재, 바깥 외)라는 한자어를 쓰시고 있는데.. 황정은- 네. 바깥으로 나왔으나 자기가 여태 겪어 온 세계와 별 다를게 없는 바깥이므로 결국은 안인, 그러니까 바깥으로 나오지 못한 화자의 이야기라고 저는 생각을 했거든요.근데 저는 이게 애초에 를 쓰고나서 방송을 통해 만난 서천석 박사님께서, 가정 폭력이나 어렸을 때 심한 폭력에 노출되었거나 뭔가 이렇게 내면에 문제가 생긴 아이들이 달라질 수 있는 계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와중에 저는 그 세계의 바깥으로 나올 수 있는 방법으로 저는 예술을 얘기를 했었어요. 음악이라든가, 예술이라든가..